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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소리/hions

암선고 일주일 전.

by hionsK 2023. 11. 29.

 

 

 

 

알림 꺼놓고 또 즐겁게 살면 돼.

조직검사를 받고 일주일 뒤에 진료 예약을 잡아두고 나오면서 우리는 이런얘기를 했다.
또 일주일의 시간이 생겼구나.
모든 것은 일주일 뒤로 미루고 아무 걱정도 없이 또 즐겁게 살자, 고.
알림을 꺼놓고 즐겁게 놀다가 일주일 뒤 알림(결과) 받으면 그럼 그 때 최선에 대해 생각하자고.

아픈건 아픈거고 일단 조직검사를 잘 해냈다는 것이 되게 좋더라.
아파서 찡그리다가도 끝났다는게 신이 나서 해실해실 웃으니 선우도 덩달아 ‘진짜 용감하다, 울지도 않고 그 무서운걸 다 했네?’ 하며 추켜세워주는데 나는 맞다고, 진짜 나는 용감하다고 검사도 끝이라고! 신난다고 날 더 칭찬하라고 요구하며 한참을 웃는다.

새로운 하루가 시작되고 어제 혼자 집에 있었을 고선생을 달래주러 셋이 소풍을 나가 가을의 멋진 풍경과 햇살을 만끽했다.
계곡에 가서 물소리도 듣고, 고선생과 숨바꼭질도 하고.
갖고 간 의자에 앉아서 멋진 풍경을 내려다보며 커피와 차를 마시고.

우리가 매일 가는 계곡 옆 산책길


참 좋더라. 참 행복하더라.

선우는 온 신경이 다 나한테 집중해있다.
뭔가 할려고 하면 다 자기가 하려 한다.

조직검사 받고 아파해서 아직도 아플까 걱정하나 싶어 괜찮다고 말해도 그래도 그냥 다 자기 시키라며 다 해주고 싶어한다.

낮에 잠시 각자 짬 난 시간에 선우는 운동을 한다고 하고, 나는 그럼 작업실 올라가겠다고 했는데
나는 선우에게 ‘너 얼른 운동하러 들어가’ 라고 하고,
선우는 내게 ‘니가 먼저 작업실 올라가’ 라고.

뭐 헤어지기 싫어하는 커플들처럼 계속 너 먼저 들어가니, 올라가니 하며 서로에게 채근하는데
선우가
‘그냥 너랑 떨어지면 불안해서 그래’ 라고 하더라.
나도 그렇더라. 그냥 눈 뜨고 있을 때는 선우가 뭐 하는지 계속 눈으로 쫓게되고 안보이면 찾게되고 찾으면 바로 옆에가서 붙어있고 싶고.
분리불안증 처럼 계속 서로만 찾고 있다.
같이 놀고 같이 수다떨고 같이 텃밭보고 같이 산책하고.

지금 참 더할나위없이 행복한데,
그래도 일은 좀 해야할텐데.. 하는 불안감이 슬핏 들기도 한다.

아니다.. 뭐 아직 6일이 남았다.
알림을 꺼놓고 그냥 선우와 나와 고선생 이렇게 셋이 하루하루 잘 살면 되는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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