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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소리/hions

조직검사, 곱니 아프더라.

by hionsK 2023. 11. 29.

 

 

 

 

상급병원으로 전원하고 초진 날짜가 잡혔다.

드디어,
‘너는 암환자야!’ 하고 확진 해줄 의사를 만나는 날.

사람이 참 많더라.
주차장을 빙글빙글 돌고, 큰 병원을 헤매고 다니다 겨우 도착해 한시간을 기다려 의사선생님을 마주했다.

전 병원에서 찍어온 내 초음파를 보여주며,
-여기 이게 모양이 이쁘지 않죠, 이게 암이 아니라고는 못하겠어요. 나머지 두개는 확인이 필요하지만, 얘는 암일 확률이 아주 높습니다.
라 한다.

내가 뭘 알겠냐만, 내가 보면 이쁘던데.. 그냥 다 이쁘던데. 이쁘면 암이 아닌가, 그럼 좋겠다.

오늘 조직검사를 받아야 한다고 일단 안이쁜 녀석을 먼저 검사할 것이라고. 그리고 일주일 뒤에 결과를 놓고 다시 얘기하자고.

또 한참을 기다려 조직검사 시간을 예약하고 중간에 시간이 떠 점심을 먹었다.
우리가 언제부터 점심을 먹었다고.
근데 뭔가를 해야겠는데, 뭘 해야할지 모르겠어서 뭐라도 먹자, 하고 근처 해변으로 가 밥을 먹고 돌아왔다.

또 한참을 기다려 겨우 초음파실로 들어가 조직검사를 했다.
보통 15~30분 걸린다고 하는데, 나는 30분을 꼬박 채워 6번정도 채검을 한 것 같다.
솔직히 조직검사는 안아프다고 괜찮았다고들 했는데… 와.. 진짜 아프더라.
마취가 덜 되었는지, 찌르고 떼어낼 때마다 생생하게 고통이 전해져 발가락이 꼼짓꼼짓.

그리고 나와서는 피가 잘 안멈춰 40분을 지혈하고 있었다.
옷 갈아입으면서 보니까 조직검사 한 부위 주변에 멍이 들어있더라.

조직검사를 한 병원은 연계병원에서 등록할 경우 다음날 바로 조직검사를 시행해 일주일 뒤 결과부터 수술까지 한큐에 가능하다고 하는데
선우와 나는 하루 생각할 시간(서울이냐 강릉이냐)을 벌고싶어 텀을 두었다가 9일정도 시간의 공백이 생겼다.
이를 두고 선우랑 한참 이야기 했는데,
9일의 시간동안 우리가 참 많이 행복했었다는 기억이 가득해서 그 덕분에 지금 어떤 결과던 담담하게 준비하고 받아들이게 되는거 아닌가 하고 있다.

우린 십수년간 야행성으로 살았는데 지난 9일동안 우린 아침형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
차를 마시며 아침 햇살에 스트레칭을 하고 뒷 산길을 따라 하루 4km 1시간씩 걷고, 고선생과 산책을 하고 세 가족이 똘똘 뭉쳐서 함께 즐거이 살았다.

매일 집 근처 산속만 산책하다가 이렇게 차 타고 사람 많고 차 많은 도시로 산책하면, 고선생의 눈빛이 묘해진다. 살짝 긴장한 눈빛에 호기심이 가득 담겨. 웃겨 정말, 원래 대도시출신 고양이면서. 지가 언제부터 산골냥이었다고 사람과 차를 낯가리니?

 

 

 

 



매일이 새롭고 즐거워서 아침에 눈을 뜰 때마다 하루가 기대가 되고 좋더라.
내일이 기대되어 잠드는 것이 숙제처럼 안느껴지더라.

그래서 그냥 이렇게 셋만 이렇게 오늘 하루만 잘 지내면 행복한거다, 하고. 미래가 어떻게 되던 하루 하루 잘 살아내었던 것이 마음을 다독이는데 도움이 된 것 같다.

비록 초음파로 종양의 크기가 2cm에서 3cm로 좀 더 커졌지만, 그게 뭐 대수랴.

아무튼 일주일 뒤 다시 진료 예약을 잡아놓고 나니,
1주일이 또 선물 같이 느껴진다.

물론 오늘은 지혈하느라 같은 자세로 누르고 있던 양 손이 어깨부터 굳었고,
조직검사를 받은 부위의 통증이 대단해 컨디션이 엉망이지만,
내일은 또 내일의 행복이 그만치 기다리고 있으니까.

그럼 된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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