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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병원8

별거없는 암환자의 일상 24.01.17-24.01.22 오랜만에 아는 사람에게 전화가 와 반가이 받으니, 상대가 엉엉 운다. 아니, 나는 괜찮은데 왜 니가 울어. 언니, 나 지금에서야 소식듣고 전화해. 괜찮아? 퍽 난감하다. 마침 선우랑 게임할려고 컴퓨터 켜던 상황이었는데말야. 통화가 한참 길어졌고, 근황과 병세와 일상과 육아와 미래. 모든 내용이 어우러져 그는 내 병세와 내 근황에는 엉엉 울고, 그의 육아와 미래 결혼생활에서는 웃고 나는 그저 묵묵하게 나를 읊고 그의 얘기를 듣고. 사실 별 자각없이 살다가도 거울 안의 빡빡머리 나를 보거나, 옷을 갈아입다 보이는 흉터와 불룩 나온 케모포트 자리를 보게되면 아, 나는 암환자구나.. 하고 새삼스레 와 닿게 된다. 그래서 이런 전화도 그 새삼스레 와 닿는 포인트. 아, 나 암걸렸지.. 2024. 1. 27.
입원 3일차, 이대로 수술까지? 선우가 집에 들르러 갔다. 늘 나와 붙어있을 수는 없는게, 집에는 고선생이 혼자 있어야하니까. 나는 나보다 고선생이 좀 더 걱정되니 잠은 고선생이랑 같이 잤으면 좋겠다고 했으나, 우리 가족에 우환이 있고 그럼 가족이 다 같이 나눠야 하는거라고. 고선생도 감내해야할 부분이라고. 그렇게 하루걸러 한번 씩 가서 충분히 놀아주고 예뻐해주고 재워주고 돌아온다. 선우가 집에 간 동안, 교수님 회진이 잡혔다. 어제 MRI 결과를 보았고 별 일 없으면 목요일 쯤 수술을 진행하는 것이 어떻겠냐 고. 오늘의 일정은 CT와 뼈주사/뼈스캔 등이 있는데 다 마치고 저녁 회진 때 상의해보고 알려달라고. 그래, 그럼 까짓거. 일단 1인실로 다시 한번 병실이동을 요청해둔다. 옆자리 할머니는 내일 수술하신다고 하고, 나는 그 하루 뒤.. 2023. 12. 16.
날라리환자 병원은 늘 그렇다. 내 신체리듬과 전혀 반대인 곳. 잠들락 하면 달려와 내 혈관을 찌르는 곳. 혈관은 오늘도 숨었다. 오른쪽 팔은 이제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는 혈관을 보호해야하는 팔이라서 무조건 왼팔에 혈관을 잡아야 하는데 이미 여러개의 상처들로 결국 시계차는 곳까지 내러오게되었다. 오늘은 CT와 MRI를 찍었으면 했다. 자리가 나면 좋겠다고. 일단 CT촬영을 해야하니 금식을 하면서 뭐든 얼릉. 먼저 MRI호출부터 왔다. MRI는 엎드려서 움직이지 않고 45분간 기계안에 들어가 있는거라 한다. 폐소공포증이 있는지 묻고, 혹시 만에하나 뭔 일이 있으면 벨을 누르라고 호출기를 손에 쥐어주며… 그래도 진행 해야해요, 이거 꼭 찍어야해요 아시죠? 한다. 귀마개를 꽂아주고, 헤드셋을 덮어준다. 노래는 90년대 .. 2023. 12. 15.
병원생활 보통 일요일 오후에 입원접수가 된다. 별 생각없이 13시부터 15시까지 접수 한다니 조금이라도 늦게가야지. 입원하면 그대로 갇히니까 버티다 제일 끝에 입원해야지. 느즈막히 일어나 느즈막히 준비를 하고 여유있게 병원에 도착했다. 근데 으잉? 1인실이 없다네. 2인실밖에. 아뿔사, 그래서 사람들이 일찍 오는구나. 원하는 병실에 들어가려고. 강릉아산병원은 2인실보다는 4인실이 더 낫다는 말들이 많아, 4인실도 물어봤으나.. 내가 들어갈 병동은 6인실만 남았다고 하더라. 별 수 없이 2인실 부탁드립니다. 73병동. 간호사 선생님이 병실을 안내해주고 바로 나를 스테이션으로 끌어 몸무게와 키를 쟀다. 아… 완전 무거운 니트와 완전 무거운 와이드 코듀로이바지인데. 역시나 기본 몸무게보다 2.5kg 정도 더 나온 상태.. 2023. 12. 14.
공포감 VS 무던함 뭔가 엄청나게 두렵거나 실제하는 공포에 일상이 버겁지는 않다. 사실 별 생각이 없다. 시술이던 수술이던 무언가를 앞두고 ‘아프다던데. 얼마나 아프려나.’ 그 정도의 걱정 이외의 것은 모든게 죽음으로 치환된다. 예컨데 내가 버틸 수 있는 두려움의 총량이 100이면, 지금껏의 모든 두려움은 고작 10 안팎이고, 다만 이 두려움은 계속 소량씩 누적되는 것이라 쌓이고 쌓이다 100이 넘어가는 순간 아, 그냥 포기하고 죽어야지. 뭐 이런 류. 그래서 주위 사람들의 ‘두려워하지마, 겁내지마, 잘할 수 있어, 이겨내야지.’ 등등의 위로에 아직은 그 감정을 잘 모르겠어서 어떤 감정일까 늘 물음표가 되어 어색하게 답하게 된다. ‘예, 그럴게요.’ 실생활의 나는 이런데 꿈의 나는 정반대이다. 일례로 조직검사 같은거. 실제.. 2023. 12. 12.
페이스북에 올린 글(23.11.10) 어제는 공식적으로 암환자 등록을 하였습니다. ‘암’이란 단어가 우리집에 찾아온 후 나는 조금 멍해졌고 선우의 일상은 내가 중심이 되었고 우리가 일구던 가죽하는유목민 노마딬의 일상은 멈췄습니다. 아! 고선생의 일상은 잘 지키고 있으니까 고선생 이뻐하시는분들 걱정마세요 ㅋ 여전히 고선생은 해맑고 이쁘고 건강하고 잘먹고 잘쌉니다. 암인것 같다, 에서 우리는 제일 먼저 하루 일과를 바꾸었습니다. 늘상 자고플 때 자고(아침 6~7시)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고(오후 2~3시) 하던 느슨한 일상에서 아침 10시에 꼬박꼬박 일어나는 새나라의 어른이가 되었지모에요! 앞으로 이른시간 병원을 오가야할텐데, 낮밤이 바뀐 상태로 병원을 오가면 컨디션이 안좋아질테니까, 가 빙구의 이유였고 저는 말 잘듣는 착한 어른이니까 지금도.. 2023. 12. 9.
어떤 암환자가 될까? "오늘 나는 암환자가 되었어. 선우야, 내가 어떤 암환자가 됐음 좋겠어?" "음.. 생각없는 암환자? 막 암이니 뭐니 자각없이 해맑고 신난 암환자. 아팠다가도 금세 괜찮아지는 암환자. 입맛없지 않고 이것저것 잘 챙겨먹는 암환자. 그런 암환자가 되었음 좋겠어!" "콜!" 2023. 12. 6.
이제 나는 공식 암환자. 한참을 기다려 드디어 의사를 만났다. 조직검사를 하고 꼬박 일주일. 선생님은 원래 알고있던 녀석 외에 바로 옆에 있는 하나의 종양과, 림프에 또 보이는 녀석도 불안하다고. 크기는 4.5cm 정도 되며, 만약 전이가 되었다면 4기, 다행히 전이가 안되었다면 2기라고 한다. 아직 젊은 나이라 공격적인 치료를 하고 싶은데, 항암도 염두해 두어야 한다고. 일단 일요일 입원해서 3/4일간 검사를 해야한다고 한다. 그래야 그 후에 수술이던 항암이던 계획이 잡힐듯 하다고. 선우는 선생님 말대로 입원을 하는 것이 맞는거 같다고 나를 바라보았고, 내가 끄덕이자 ‘입원할게요. 그리고 부분절제던 전체절제던 저희는 관계없습니다. 의료진의 판단에 따라 좋은 예후를 기대하는 것이 목적이니까요.’ 라고 입원에 동의했다. 나는 오늘.. 2023. 12.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