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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소리/hions

별거없는 암환자의 일상

by hionsK 2024. 1. 27.

24.01.17-24.01.22

오랜만에 아는 사람에게 전화가 와 반가이 받으니,
상대가 엉엉 운다.
아니, 나는 괜찮은데 왜 니가 울어.
언니, 나 지금에서야 소식듣고 전화해. 괜찮아?

퍽 난감하다.
마침 선우랑 게임할려고 컴퓨터 켜던 상황이었는데말야.

통화가 한참 길어졌고, 근황과 병세와 일상과 육아와 미래. 모든 내용이 어우러져 그는 내 병세와 내 근황에는 엉엉 울고, 그의 육아와 미래 결혼생활에서는 웃고 나는 그저 묵묵하게 나를 읊고 그의 얘기를 듣고.

사실 별 자각없이 살다가도 거울 안의 빡빡머리 나를 보거나, 옷을 갈아입다 보이는 흉터와 불룩 나온 케모포트 자리를 보게되면 아, 나는 암환자구나.. 하고 새삼스레 와 닿게 된다.

그래서 이런 전화도 그 새삼스레 와 닿는 포인트. 아, 나 암걸렸지, 하고.

상대가 너무 울먹거리다 엉엉 우니까 내가 어째얄지를 잘 모르겠더라. 나 진짜 괜찮은데… 하고 좀 무덤덤하게 말을 하면,
‘나는 언니의 무던함과 침착함이 늘 좋았는데 지금도 그러네 엉엉’ 하니까. 그저 별 것 없는 일상 얘기를 하며 화제를 돌릴 수 밖에.

<유로트럭을 결제해놓고 핸들셋트를 구매했다. 나는 이제 개멋진 트럭운전수가 될꺼야>


-

중간평가를 다녀왔다. 그러니까 3차 항암입원 전, 2차의 중간검진.
지난 1차 항암때는 호중구수치가 550밖에 안되어 선우도 나도 맥이 탁 풀려 엄청 우울했는데,
이번에는 나름 준비를 잘 해두었다. 뭐 검사 전 이틀 정도는 완전 푹 자고 낮잠도 자기, 잘/ 많이 먹기. 벼락치기 시험마냥 말이다.

채혈을 하고 한시간 반 정도의 텀동안 밥을 먹고, 외래를 갔다.
‘이번에는 어땠나요? 컨디션은 괜찮았습니까?’ 하고 묻는 교수님말에
‘예, 이번에도 괜찮았어요.’
라고 답을 하니까

‘두번째 세번째 하면서 점점 더 힘든 경우가 있는데..’
‘맞아요, 지난번 보다는 좀 더 메슥거림이 심하긴 했어요’

진짜 그런가보다. 누적 마일리지.
계속 쌓여서 점점 누적되는 고통.

그럼에도 다행히 호중구 수치는 900대라고. 좀 더 잘 관리해서 다음주 항암제 맞을 때 입원 해서 만나자고.

물론 900이 좋은 수치는 아니지만, 그래도 지난번 550보다 얼마나 좋아진거야.
괜히 기분이 좋아져서 덩실덩실.

<케모포트 상처가 하나도 안낫고 자꾸 터지기만 할 때, 간호사선생님께서 하트를 그려주었다. 이제 곧 나을거라면서.>


근데 아직 일정이 남았다. 케모포트 카테터 자리의 상처. 3번 꿰매 3번 다 터진 상처.

강릉아산병원 시스템은 이렇다. 혈액종양내과교수님은 혈액검사 결과에 따른 내용을 분석해서 상담을 해주고, 이런 외과시술은 다른 상담실선생님(전담간호사)이 해주시는데 지난번의 그 선생님과 같은 분(https://nomadikims.tistory.com/157)
상담실로 들어가니 '케모포트가 왜요?' 하신다.

'아, 지난번에 선생님께서 포트 위쪽 카테터 자리가 안아물어서 교수님 호출하여서 한땀 꼬매었잖아요?'

'아, 오른 쪽이죠? 봅시다.'

'왼쪽이고요, 그 때 교수님이 한땀 따주신거 그게 중간에 터져서 사라지고, 씰 서너개로 붙여두었는데요..'

'그럼 떼면 안되겠네요?'

'아니 그게 벌써 2주 전이고요, 씰 붙여둔거 아예 저희가 2주간 안 떼고 겉에만 소독해놓기만 했거든요'

'근데 아직 안아물었으면 어떡해?'

'선생님 이게 벌써 한달 반 전에 포트를 심은거고요, 지난번 선생님께서 보신 것이 3주 전이었고..'

'이거 누가 처치한거죠??

'김00선생님께서 교수님이랑 상의하시고 씰 붙여주셨..'

'잠시만요 통화해볼께요.'



'야, 너 00환자 포트 심은거 카테터 자리 니가 처치했다매? 그거 위에 지금 스트립씰 붙어 있는데 떼도 돼? 그 때 어땠는데?

일단 사진 찍어놓은거 보내봐. 니가 2주전에 붙였다메.'



조금씩 막 스트레스가 쌓이는데... 선우가 못참고



'선생님 잠시만 저희 얘기 좀 들어주세요. 이 포트 심는 수술은 1달 반 가까이 되었구요, 선생님께서 지난번에 봉합 푸는 시술 하셨다가 안 아물었던 것이 3주 전, 그래서 교수님이 한 땀 다시 따주셨고, 그 후에 항암하러 들어왔을 때 김00선생님께서 열어서 봐주었을 때 피가 굳어 있어서 소독하며 다 제거하고 실밥이 안보여서 그 밴드를 붙였던게 2주 전이에요.
이런 상황에서 선생님께서 의료진인데 저희에게 떼도 되겠냐 안되겠냐 이렇게 불확실하게 말씀하시면 저희는 어째야 하나요?'

하니까
'아니 그게 아니고' 로 시작되는 변.
다시 처음부터 선우가 짚던 얘기 계속하시면서 그동안의 일을 나열하시길래 내가 못참고

'선생님, 잠시만요, 지금 김00선생님께 어떤 상황이냐 브리핑 요구하셔봤자 김00선생님도 2주전 상황을 어떻게 바로 생각해내며, 사진을 언제 찾으시겠어요.. 여기 저희가 그 때 김00선생님과 공유한 사진 이거 보시고요'

사진을 본 후, 전화연결해서
'교수님 어디 가셨어? 자리에 계셔?' 하고 질문 하시더니 교수님한테 가심.

다시 오셔서 특수주사실 가자고. 한번 뜯어보자고.

결국 씰을 제거하니까... 상처가 아물긴 했다.
근데 살갗이 너무 얇아서 그 밑에 하얀 카테터가 보인다고 한다.

이 선생님께서 불안하니까 그래도 씰 좀 보호차원으로 서너개 붙이자고.
그 작업하면서 선우가
'선생님 아까는 제가 답답해서 한말씀 드린건데 마음 상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하고 말씀드리니
'아니요! 괜찮아요. 보호자님이 마음상하신거 아니죠?'
하며 서로 마무리.

그냥 그렇다, 우리는 그 상담실 앞에서 대기할 때 다른 선생님께서 내용을 전달하시길래
우리차례에 들어가,
'카테터 자리 봉합이 덜되었어서 다시 꼬매었는데 그게 터져서 스트립씰로 마감해 두었는데 그거 제거하러 왔습니다' 라고 설명을 하면 될거라 생각했는데.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대화가 산으로 가는 것이 답답했을 뿐.
그냥 우리가 잘 설명하고 싶었는데 중간중간 말이 끊어져 선생님께서 다른 쪽 확신을 하거나 다른 선생님을 개입하여 우리 말을 다 안들어주는 것이 답답했던거고.

아무튼 다 말하고 나니 뭐 큰일은 아닌데 힘든 일 하시는 분 스트레스 받게 한건가 하는 생각도.

불확실한 언어보다 서로 손 끝을 맞대면 한큐에 소통이 되는 기계같은게 얼른 개발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언어는 너무도 불안정해.

그러나 저러나 드디어, 케모포트 수술은 한달 반 만에 마침내 마무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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