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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소리/hions

드디어, 수술

by hionsK 2023. 12. 21.

 

 

 

생각해 보니, 우리 교수님 완전 짱이셔.
엄청 쿨하게
‘수술 전에 검사해야하는 거니까 입원하시죠!’
입원을 하고나니
‘그냥 입원 한 김에 수술까지 할까봐요!’
ㅋㅋㅋㅋ 완전 일사천리, 우유부단 회피의 전형인 나한테 딱인 분이심.

그래서 어쩌다보니 검사하러 입원했는데
얼레벌레 수술날이 되었음.

수술 전 텐션이 너무 높아서, 와, 이래도 되는거야? 하면서 좀 무서운 척 하고 슬픈 척 해야지! 하고 연기하는 찰라의 순간.


뭐 1인실로 옮겼겠다, 옆 침대 할머니의 섬망 비명을 안들으니 잠도 잘 잤는데…
이상하게 편도가 살짝 부운 것 같은 느낌.
이거 잘못하면 수술 못하는거 아닌가 싶어서 가글 해주고, 따뜻한 물 마시면서 관리 하고 있다가,

수술 전 마지막 스케쥴로
<림프절 염색> 이란걸 해야한대.

’핵의학과‘로 가니 몇번 뵈어 이제 반갑기 까지 한 선생님들께서 오늘은 좀 아플거라고 몇번을 말씀하시더라.

아픈건 뭐 어쩔 수 없는거고..
다만, ‘얼마나 걸릴까요?’가 제일 궁금한 것.
사실 아픈건 언젠가 끝난다, 고 생각되어서 나는 ‘얼마나 아플까’ 보다, ‘언제 끝나나’ 가 그 시간을 견디는데 더 필요한 질문이다.

림프절 염색은, 내 암이 퍼져나간 림프절을 찾아내기 위해 수술 전에 꼭 필요한 검사라고 하는데,
와.. 진짜 아프더라. 보통 아파도 끄응, 한마디 안하고 그냥 바라보거나 다른 생각하며 버티던 내 입에서도 ‘으윽’ 하고 신음이 삐져나오더라.
온 몸을 관통하는 듯한 통증.
으, 지금도 상상해보니 역시나 곱니 아팠음.

수술은 12시에 시작되어 3시간이 안되어 수술방에서 나왔다.

무언가 공장처럼 건조한 느낌의 수술실들이 즐비한 차가운 공간을 거쳐,
내가 찢기고 오려질 방을 찾아 들어갔고
흔히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던
‘환자분 10부터 천천히 숫자를…’ 이런 거 없이
어느 순간 내 의식은 저 멀리 안녕.

수술 중간인지 끝인지 잘 기억은 안나는데
‘환자분 가만히 계세요, 환자분!’ 하면서 나를 제지하는 다급한 목소리들과 손길의 장면이 남았다.
아마 마취에 강해서(이상하게 마취를 하면 금세 풀리는 편) 중간에 마취에 풀렸었고, 뭔가 목이 답답하고 숨을 못쉬는 느낌이 들었다는 기억. 뭔가를 잡아 빼던 기억.

그리고나서의 기억은 회복실이었는데,
정신을 차리려고 엄청 노력했었다.
나보다 먼저 온 환자들이 2명이 있었고,
나는 계속 집중해서 숨을 쉬려고 노력했다.
명상하는 것처럼 내 정신줄을 잡아 깊게 들이마시고, 내 뱉고, 마시고 내 뱉고. 회복실 가운데 벽의 시계를 노려보며 8초에 한번씩 마시고 내뱉고. 이러다보면 언젠가 선우한테 가겠지.

회복실에선 아무것도 부여잡을게 없더라. 오로지 시계만 볼 수 있었고, 초단위의 숫자들을 보며 호흡을 할 수 밖에. 안그러면 외로워질거 같더라.

그렇게 계속 정신을 차리고 호흡을 하려 노력하니 제일 먼저 입원실로 보내주더라고. 다행이야.

 

 

입원실로 돌아와 선우를 만나면서부터 마취기운이 다 없어지고 통증의 시간이 돌아왔는데
나는 수술 부위의 통증보다 오른팔이 떨어질 듯 저려서 미칠 것 같더라.
선우가 너댓시간을 계속 주물러 주는데도 그 팔은 내 팔이 아닌냥 계속 저려서 미치는 줄…

마약성 진통제는 15분에 한번씩 눌르라고 했던가. 10분에 한번씩 눌르라고 했던가.
아무튼 다 못쓰고 빼는 경우도 많다고, 참지말고 잘 누르시라, 는 간호사 선생님의 말씀에 나도 누르고 선우도 누르고 계속계속 눌러댔더니..
들어와서 진통제 양을 체크하실 때마다 모두들  
‘’벌써 이걸 다????‘’ 하는 눈빛으로 놀라시더라고^^;
알고보니 자동으로 들어가는 거였고, 그래도 아프면 일정 시간에 한번씩 ’더‘ 누르는 방식이었는데
우리는 우리가 눌러야 하는줄 알곸ㅋㅋㅋ 엄청나게 빨아댔던 것이었음 ㅋㅋㅋ

수술의 통증은 그럭저럭 버틸 수 있었는데 팔 저린 것이 제일 큰 고통이었던 기억. 또 편도가 아파서 물을 마시거나 침을 삼키는게 고통스럽다는 기억.

당일 저녁즈음에 담당 교수님이 오셔서는 수술은 잘 되었다고. 림프절 전이가 있어서 몇개 제거했고 뭐했고 블라블라. 수술 중에 마취가 풀려 목안의 호스를 빼려고 해서  편도를 다쳐 아플거라 가글 좀 처방해드리겠다고 블라블라.

선우는 하루종일 아무것도 안먹고
내가 수술장에 들어간 그 후부터 뭘 해야할지 몰라서 병실을 쓸고 닦았다고 했다.
물티슈를 반통을 써가며 바닥을 닦고 온갖 먼지들을 다 닦아냈다고.
생각보다 수술시간이 길어져 걱정했는데
회복실에서 병실로 올라온다는 문자에 그 순간부터 기다리는 시간이 엄청 더뎠다고 한다.

바닥 반짝이는 것 봐 ㅋㅋㅋㅋ


수술실에 보내놓고는 아무것도 할 수 있는게 없어서 무기력했는데
팔을 주물러 주면 덜 아프다 하니 이거라도 쓰임이 있어서 참 다행이라고.
너댓시간 계속 내 팔만 주무르는게 힘들거 같아서, 그만 하라 했더니 ‘이거라도 할 수 있어서 좋다’ 고.

그날 밤은 선우도 나도 자다 깨다 자다 깨다 하면서
마약 진통제의 버튼을 계속 눌러대었는데
그래서였나… 뭐 팔이 떨어질 듯 저린것과 목이 아파서 뭘 먹는게 힘든거 빼고는 수술부위는 안아팠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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