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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소리/hions

아니, 내가 코로나라니!

by hionsK 2023. 12. 21.

 

 

2023.11.17-18

<아니, 내가 코로나라니!>

수술을 얼레벌레 해 놓고는 마약성 진통제를 미친듯이 빨아제낀 덕분에 수술부위의 통증은 없었다.
생각보다 상태가 괜찮아, 선우는 잠시 고선생을 챙기러 집에 다녀오기도 했다.

오후가 되면서 침도 삼키지 못할정도로 인후통이 심했고 열이 있는 것 같은데, 채혈하고 혈압재고 체온을 쟀을 때는 괜찮다고 하더라.
그냥 컨디션이 안좋은가 싶어서 선우랑 틈날 때 마다 잘, 자기로 해 계속 누워서 자고.

병원 밥이 꼬박꼬박 나왔는데 입맛이 별로 없어도 선우와 으쌰으쌰 해가면서 잘먹어야 회복을 하지! 하며 오바하듯 더 먹어댔다.

<맛있다. 병원밥 맛없다던데 나는 꽤 괜찮더라. 거기에 선우가 집에서 싸온 유부초밥이면 게임 끝!>

회진 때 윤경원 교수님께서 수술부위를 체크해주시면서 느긋하게 병원서 있다가 월요일이나 화요일 쯤 퇴원하자고, 그 후 외래에서 결과 놓고 앞으로의 치료 계획을 잡자고 하시더라.
뭐 병원생활 재밌으니까, 3~4일 더 있어도 좋지 뭐.

병실에만 있다가 좀 답답해져서 선우와 로비 이곳저곳을 돌아댕겼다. 늦은 밤이라 사람이 없으니 휠체어 대신 걷고도 싶고.

로비 대기실 의자에 앉아 한참을 얘기했다.
1차로 얘기하다 자리 옮겨(병원에 수많은 의자들. 어디까지 앉아봤니?!?ㅋ) 2차로 얘기하고, 또 다른 곳으로 옮겨 3차로 얘기하고.

선우에게
미래에 혹시라도 암이 크거나 악성이거나 시한부이면.
치료를 하다하다 계속 안되면.
그 때는 포기하고 싶다는 얘기에
그럼 같이 죽자, 해줘서 고맙다고 하니까

선우가
이 암은 우리 암이라고. 내 암이라고. 내가 암선고 받은거고 나는 같이 너랑 함께 하고 있고 끝도 함께라고.
그렇게 말하더라.

그래 그러고보니까 어느 순간부터 선우는 모든 주어가
‘우리’ 였다.

‘우리 치료는 00일에 시작 되니까 마음 편하게 놀다가 00일부터 병원 가면 돼.’
‘우리가 수술 받고 제일 먼저 해야할 것들과 하지 말아야 할 것들 정리한 파일 있으니까 나중에 시간 날 때 확인해’
‘우리 암은 그래도 착한암인가봐, 그치?’
등등.

’하연이 니 암‘ 이 아닌,
‘우리 암’

아.. 진짜 얘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구나.

술 없이 술자리 3차까지 간 것처럼 병원 구석구석을 탐험하며 수다를 떨었다.
모처럼 컨디션이 좋았고, 내 제일 친한 친구랑 함께였으니까.

수술 3일차. 토요일.
몸 상태가 영 메롱이더라.
열이 올라서 간호사 선생님이 체온을 재보니까 38도.
그대로 쓰러져서 기절하듯 자고 일어나니 땀이 한바가지.
체온이 다시 정상이네.
뭔가 이상하다?

담당 선생님께서 코로나랑 독감 검사를 해보자 해 했더만… 30분도 안되어 코로나 당첨.

 


와, 지난 4년간 산골에 살면서 잘 피해다녔는데
병원에서 걸리다니.
잠복기를 따져보니, 2인실에서 당첨된거더라.

코로나 입니다, 에서 병실은 감옥으로 변했는데
직전에 병원 세탁실에 빨래를 돌려놨던지라, 간호사 선생님께 말씀드리니
‘보호자님 개인정비 잘 하시고 소독도 잘하시고 후딱 다녀오셔요’

빨래를 가지러 간 선우가 한참을 안오길래 뭔가 좀 의아했는데,

선우가 강릉아산병원 앞 마트에서 6만원 어치 음식물을 털어옴. 냉동식품부터 빵/ 잼/ 소스 등등 ㅋㅋㅋ

빨래 가지고 오면서 마트를 털어왔더라고.
아무래도 격리되는데 밥은 1인분씩 나올거고, 보호자인 선우도 격리해야하는데 마지막 외출인만큼 퇴원까지 3일. 먹을걸 채워야 하지 않겠냐면서.
무려 마트에서 6만원어치를 사왔음;

(며칠 후에 차 뒤를 보니깤ㅋㅋㅋㅋ 포장지가 수북하더라 ㅋ 가방에 다 갖고 오기 힘드니까 차 안에서 박스 뜯은 흔적들ㅋㅋㅋ)

알고보니까 그간 선우도 몸 상태가 별로 였다고 한다.
내색은 안하고 그냥 피곤하다고 체력 보충하자며 잠을 잤던게… 아파서였구나.

한참 먹거리들을 냉장고와 선반에 정리하고 있는데
전화가 온다?
내일 퇴원하라곸ㅋㅋㅋㅋㅋㅋㅋ
아니 님들하, 우리 지금 먹을거 6만원어치 사놨는데요???!!!!??!!


<삐뚤어진 코로나 환자.>


망했다.
아니, 한편으론 다행이다.
내일이면 고선생을 만나는구나.
그럼 된거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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