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12.27-24.01.01
원래는 1월 1일 입원이었는데, 하석훈교수님께서 하루 미루어 2일로 바꿔주셨다.
그럼 뭐해.
내 안락한 호텔 안마의자 안녕, 성심당 안녕. 대전여행이 물거품이 되었고 나는 집에서 갇혀있어야 하는거잖아. 흑흑.
병원에 다녀오고 노시보효과(nocebo)인지 갑자기 방광염이 발발, 꼬박 하루 미열에 통증이 있더라. 근데 또 지나니 멀쩡.
우리의 계획은 심플하지만 원대했다.
항암을 하면서 일단 가죽하는유목민 Nomadik의 일을 80%정도 줄였다.
느슨하게 치료에만 전념하자, 가 목표.
내 디자인과 각인은 닫아두어 덕분에 나는 2층 작업실에 올라갈 일이 없게 되었다.
그리고 세부적으로는
항암 첫주는 메슥거릴 테니까, 푹 쉬면서 그동안 하고팠던 게임들이나 하자, 였다.
둘째 주는 컨디션이 올라올테니 더 열심히 게임을 하고 ㅋ
셋째 주는 최상의 컨디션으로 여행을 가자, 그래서 항암 8차 동안 8번 전국을 여행하자.
뭐 여행은 물건너 갔지만, 우리에겐 게임이 있다?
그래서 컴퓨터를 두대 구입했다.
원래 우리집 거실에는 다용도실 문짝에 다리를 달아 평상처럼 만들어 둔 것이 있었고, 그걸 쇼파대용으로 쓰고 있었는데, 다리를 교체하니 컴퓨터 두대를 놓을 수 있는 널찍한 테이블이 짜잔!
항암 하는 동안에는 열심히 게임공간으로 사용하고, 항암 끝나 일상으로 돌아오면 글도 쓰고, 그림도 그리고, 손님들 오면 근사한 식사하는 테이블로 써야지.
그럼 신나게 놀아야 하겠는데 무슨 게임을 할까 엄청 고민했다.
평소 파밍Farming하는 것을 좋아하고 노가다하는 것을 좋아하는지라 MMORPG 나 생존형 게임을 해야겠다, 하고 Steam을 열어보니! 아닠ㅋㅋㅋ 6년 전에 사두었던 Hobo:Tough Life 일명 홈리스게임이 있더라. 그때도 재밌어보여 사놓고는 한 번도 해보지 않고 그냥 받아두었던. 그래서 게임을 해보니까, 아... 망할 한국어버전이 없더라고.
문제는 메슥거리는데 영어를 계속 들어 해석해서 미션을 해야하는게 생각보다 쉽지 않더라. 더 메슥거리는거 같엌ㅋㅋ
그래서 그냥 포기. 한국어 지원해주면 진짜 재밌게 할 수 있는데.
아무튼 그래서 Raft게임을 시작했다.
이건 아주 작은 뗏목에서 시작해 망망대해를 유영하면서 바다에서 건진 쓰레기(?)자원들로 뗏목을 넓히고 물건들을 만들고 섬이 나오면 섬도 탐험하고 바닷속도 탐험해 생존하는 게임인데
나는 뭔가 파밍을 엄청 좋아하니깤ㅋㅋㅋ 파밍담당이고
선우는 내가 파밍해온 자원들로 뗏목을 꾸리고 연구를 하고 물건을 만들고 발명을 하고 뭐 그런 담당.
초반에는 엄청 재밌는거야. 섬에 사는 동물들도 잡아와 뗏목에 풀어놓고 키우는데
라마도 3마리가 되고, 염소도 4마리, 타조인지 닭인지 모를 새도 3마리. 그래서 걔들이 주는 털과 우유와 달걀로 또 뭔가를 만들고. 우리만의 낙원을 만드는 게 아주 즐겁더라고.
그러다 보니 하다가 좀 허리 아픈데? 하고 시간을 보면 막 10시간이 지나있고 그런고야?ㅋㅋㅋㅋㅋㅋ
아 나 암환잔데? 자중해야겠다?
더구나 호중구 수치가 낮아서 다음 항암을 받니 마니, 미루니 마니 하는 때인데. 모범적인 일상을 꾸려야하지 않겠어?
그래서 연말연시는 조신하게 컨디션 관리하면서 잘먹고 잘 쉬고 게임도 적당히 하고.
그렇게 1월 2일 드디어 세번째입원, 항암 2회 차의 날이 다가오고 있었음 두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