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12.14-18
나는 눈 감고 별 관심 없이 지냈는데, 선우는 ‘우리’암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해 내게 브리핑 해주었다.
3주 사이클로 돌아가고, 첫주는 미약한 후유증, 2주차는 면역력이 최저점으로 낮아지는 기간, 3주차는 컨디션을 회복하는 기간.
그래서 항암 1차와 2차 사이의 3주의 중간 지점의 날 앞뒤로 2일정도. 총 5일을 몸을 사리는 기간으로 정해두고, 그 나머지는 행복하게 산책도 하고 여행도 가고 즐겁게 살자고.
항암 8차니까 총 8번의 여행을 가보자고.
응, 그래 그럼 진짜 신나겠다!
항암 이틀차부터 구토 오심이 심한경우가 많다는데,
나는 그럭저럭 괜찮았다.
그냥 내 몸이 한 25개쯤의 레이어로 나뉘어져서 각개의 레이어가 제각각의 바람으로 제각각의 방향으로 유영하는 것 같은 느낌.
일렁일렁. 일렁일렁.
슬쩍슬쩍 어지럽고 대놓고 피로하고 약하게 두통있고 뭐 그런 상태.
어, 그래도 생각보다 괜찮다. 이정도면 충분히 버틸 수 있을 것 같아.
그렇게 다행히 큰 후유증 없이 잘 넘어가나 했다.
근데… 항암 하루 전에 심은 케모포트 부분의 상처를 드레싱 하려고 밴드를 벗기니,
윗 부분 카테터가 심겨진 작은 상처가 벌어져있더라.
케모포트 본체를 삽입한 곳은 녹는 실로 안쪽을 꼬맨 후 본딩을 해 두었고, 윗쪽의 작은 구멍은 꼬맴없이 그대로 본드로 처리를 하였는데, 밴드에 본드가 붙어 그대로 벗겨진 것.
상처 구멍으로 하얀 카테터가 보인다.
끙, 하고 입술을 깨무는 선우가 너무 화가 나 보이는데, 어차피 주말 긴급번호라며 알려주셨던 전담 선생님도 주말에는 받지 않으니 응급실로 가야한다, 하였던터라 응급실을 가느냐, 아님 내일 일요일 버티고 월요일날 다시 연락을 취해보느냐.
나는 괜찮았어서, 다행히 상처 주변에 염증현상은 안보였고 그런 통증은 무거운 산에 돌 한무더기 얹는 건데 뭐.
그냥 소독하고 다시 덮어, 그리고 월요일 전담선생님이랑 통화해보고 병원 가자.
한번 꼬이면 계속 꼬이는거지 뭐.
월요일 아침부터 전담 선생님께 문자 보내고 했는데 선생님도 바쁘시니까. 잠시 기다리란 얘기에 병원으로 출발하려다 다시 누워 쉬고 있었다.
일단 담당했던 의사선생님이 오늘 휴무라, 외래를 잡을 수없다고. 그냥 응급실로 가셔야 하고 응급실에 얘기는 해두겠다고.
응급실 입구에서 1차 환자분류가 시작되고 응급실이용료(6만 얼마 따로 붙는 것 같은데 자세히 기억 안남)에 대해 안내 받고.
드디어 응급실 안쪽으로 입장하니
또 2차 분류가 이뤄진다.
응급실 상주 의사선생님은 내 상처를 보고, 그 앞의 간호사선생님은 내 차트를 보고 내 오른손에 환자번호와 혈관보호팔찌를 채워주고는 대기.
한참 대기 하니, 한 선생님께서 이송베드를 가지고 와 옷 갈아입고 누워있으래.
아… 엊그제 퇴원했는데 다시 환자복으로 갈아입으라니.
아니 그냥 한땀만 똑 꼬매면 될거 같은데, 상의만 바꿔입고(혹은 그냥 맨투맨 목부분만 살짝 잡으면 되는데?) 그냥 응급실에서 꼬매면 안되나?
기분이 너무 별로로 옷을 다 갈아입고
시계도 풀고 반지도 빼고 양말도 벗고 누워서
내 감정을 조절하려고 애쓰고 있었는데 갑자기 반가운 얼굴이 등장했다.
혈액종양내과 담당교수 하석훈 선생님.
급박한 전장통에서도 아는 얼굴 만나면 반가울꺼야.
반가운 마음에 인사를 나누다가 지난 케모포트 삽입할 때부터 속상한 상황들이 많았는데 상처가 또 이렇게 되어버리니 너무 화가 났는데 한편으로는 엄청 반갑더라.
선생님은 늘 그랬듯 웃는 눈으로 걱정되어 잠시 들렀다고.
나는
결국, 다시 그 케모포트 삽입한 그 수술실로 끌려 감.
진짜… 절망스러웠었다.
이 공간 너무 싫은데.
대기실에서 지난번 처럼 문이 열릴 때마다 선우가
‘요나야 괜찮아, 나 여깄어!’
‘우윳빛깔 김요나 화이팅!’
막 이렇게 휴대폰에 띄워 보여주는데도 기분이 엉망.
이 공간 너무 싫다 진짜 싫다…
녹색 마스크, 녹색 가운의 수술복 차림의 한 선생님이
‘환자분, 이름하고 생년월일 확인할께요’
를 시작으로 꽤 다정하게 말을 걸어주었다.
포스 삽입한게 문제가 있다고 들었는데 한번 볼 수 있을까, 아, 이부분이구나, 환자분 그럼 잠시만 대기하다가 바로 수술실로 안내해드릴게요! 춥진 않으시죠? 등등.
수술실로 가는 길에도 살갑다.
수술실에 들어가니 저 멀리에서 ‘환자분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를 건네고 수술대에 올라가니 다들 달려와 상처를 보면서 얘기를 나누다가
‘그래도 환자분 포트 다시 재삽입 할까 걱정했는데 포트는 괜찮은 상태 같아요. 혹시 드레싱 하셨나요? 아 그랬구나 너무 잘하셨네요! 염증도 없고 아주 깨끗해서 위에만 한땀 꼬매면 될 것 같은데 좀 있다 교수님 오시면 볼게요. 춥진 않으세요? 수술실이 원래 좀 추워서, 이것 좀 덮어드릴게요. 여기 꼬매는데 소독해야하고 고개 살짝 오른쪽으로 돌리시고, 상처부위만 나오게 덮어야하는데 괜찮으세요? 답답하면 말씀하세요? 아직 교수님 안오셨으니까 조금만 걷을게요, 이거 답답해서 힘들어하는 분들이 많아서.. 빛은 좀 들어가죠? 빛이 들어가면 좀 낫다고 해요. 아주 쪼금이라도 불편하거나 답답하면 꼭 말씀하세요? 환자분 마취들어가요 따끔할거에요, 한번 더 따끔, 원래 마취주사가 엄청 아파요. 이제 거의 끝나가요’
이 공간
그 때는 지옥이었는데
오늘은 꽃밭이네.
너무 혼란스럽더라.
이렇게 다정한 사람들인데 지난번엔 뭐가 꼬여서 나를 방치했던거라고? 설마…
지난번엔 내 운없음이 진짜 극강이었나보다.
응급실로 다시 돌아오니 선우가 기다리는동안 정리해둔 병원 상담실에서 문제 제기할 일목요연하게 정리해둔 리스트를 내민다.
컴플레인의 목적은
‘이 환자는 진상입니다, 그러니 신경쓰십시오’
그동안 실수에 내가 다쳐도 웃고, 혈관 터져도 괜찮다 웃고, 순서가 밀려도 웃고. 다 좋은게 좋은거라 웃고 말았는데 그러다 보니 정말 너만 아프고 너만 손해보는거 같잖아, 그러니까 우린 진상입니다, 하고 차트에 써주고 그거 보고 좀 더 신경써주었으면! 하는게 선우의 바람.
근데 나는 꽃밭에 있다 왔잖아?
지난 서럽고 억울한 감정이 눈녹듯 다 사라져 돌아왔잖아?
그래서 그냥 나옴 ㅋㅋㅋ
심지어 응급실 수납하는데, 1만 얼마만 나옴.
응급실차지도 안 붙었더라.
물론 집에서 병원까지 달려갔다가 시간 쓰고, 다시 돌아와 그날의 컨디션 다 망치고 하루를 망친거야 아쉽긴하지만
결론은 그럭저럭 해피엔딩.
(근데 이 상처, 이대로가 끝이 아녔음 투비컨티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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