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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소리/hions

항암 2주차

by hionsK 2024. 1. 1.

23.12.19-26

자잘한 사건(케모포트 상처 벌어짐)이 있었지만
꽤 좋은 컨디션으로 1주 차를 잘 보내고 2주 차가 되었다.

보통 항암제를 넣고 3-4일정도 구토/오심의 부작용이 있다던데, 나는 다행히 일렁이는 기분을 잘 달래 가며 식욕을 유지해 잘 먹고 잘 쉬었고

2주 차에는 면역력이 떨어져 설사나 구내염 등 부작용이 있을거라(검색의 왕 선우가 다 검색해서 알려줌)하였는데, 다행히 괜찮았다.

손톱이 약해지고
-쉽게 부러지거나, 변색이 되고 심지어 뽑히기도 한다고.
내부 장기가 약해지고
-장내 점막이 약해져 식중독 등 취약해져 설사 부작용이 난다고.
입안이 약해지고
-입안의 점막이 약해져 헐거나 패여 밥을 먹기도 힘들다고.
머리카락이 다 빠지고
-이건 뭐 흔한 부작용
상처가 나면 아무는 것이 더디고
-그래서 이것때문에 문제가 생김
피가 잘 안멈추고
-혈소판도 부족한 상태

여기에 개인적인 부작용(?)은 냄새에 민감해졌다.
선우가 늘 바르는 핸드크림 냄새가 너무 역해서, 그대로 쓰레기통에 버리고는 무향 핸드크림을 샀다. 카밀 핸드앤네일 센시티브
네일 강화도 된다니까 뭐 손톱이 원래 약한 선우랑 곧 약해질 나한테도 좋겠지.

<카밀 핸드앤네일 센시티브>



돌다리도 두들겨가며 발걸음을 하듯
최대한 조심조심하였다.

손톱 영양제도 사서 발라주고. 한나앤마리 네일세럼

<한나앤마리 네일세럼>

 
장염예방을 위해 김치(익혀먹으라더라)도 안 먹고 우리 집 물은 계곡물인데 설마, 해서 보리차를 끓여마시고,
상처가 안 나게 칫솔도 바꾸고. 켄트로얄 프로프레쉬

<켄트로얄 프로프레쉬>


자기 전 가글을 해주고/(병원처방) 탄툼액 가글

<탄툼액>

 

머리카락은 이미 다 밀어버리고,
상처가 안 나게 작업실(일 안 한 지 2달째)과 주방엔(요리 못한 지 오만 년째) 얼씬도 못하게 선우가 막고 있고.
 
그렇게 항암 2주 차를 잘 끝내고 있었다.
이제 2회 차 항암을 대비해 채혈을 해 검사를 한 후 하석훈 교수님 외래에 다녀오면, 곧 대전에 놀러 갈 수 있다.
 
와, 나 의외로 항암 우등생인가 봐?

 대전은 꼭 가고 싶었다, 마침 연말이니 성심당에 들러 빵을 잔뜩 먹고, 또 잔뜩 사서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 택배로 신년인사를 해야지.
내가 다 먹어보고 제일 맛있는 빵만 골라서 손글씨로 감사 편지를 써 택배 보내야지.
그렇게 올 한 해도 아껴주고 사랑 듬뿍 주었던 분들에게 내년에도 잘 부탁드린다 인사드려야지.
 
미리 호텔도 예약해 두었다. 호텔에 글쎄, 안마의자가 있대? 아 곱니 신나.
 


우리 집에서 병원까지 1시간.
외래 시간은 10시 15분 / 그에 앞서 채혈은 08시 40분.
 
그렇다면 아침 7시 30분엔 출발해야 하고 새벽 6시 30분에는 일어나야 한다는 얘기.
아직도 야행성 기질(근 15년을 야행성으로 살았는데, 쉽게 두어 달만에 새벽형인간으로 바뀌겠어?)이 남아있어 새벽에 잠들어 잠시 눈만 붙였다 일어나 병원으로 가 채혈을 했다.
채혈을 하고 검사하는 시간 텀이 있어 근처 해변가 빵집에서 차와 빵도 먹고 느긋하게 외래에 갔다.

<어느 날의 어느 바닷가>


 
이게 시험은 아니지만, 우리는 지난 2주간 참 잘했으니까. 그게 수치로 나타나겠지? 모범적인 항암환자겠지? 하고 생각을 했었다.
그래서, 교수님의 화면의 숫자들과 말들이
처음엔 이해가 안 되더라.
 
보통 대개의 경우는 2500
항암을 할 수 있는 수치는 1500
나는 550
 
응? 저는 아주 컨디션이 좋은걸요? 밥도 잘 먹고 부작용도 하나도 없었고요.
 
내 몸에 싸움이 없단다.
보통은 내 몸의 백혈구들이 열심히 일하고 싸워서 열도 좀 나고, 설사도 좀 하고 막 이런 건데
나는 지금 호중구 수치가 550밖에 안되면서 이렇게 컨디션이 좋은 건
내 몸 안에 레지스탕스, 싸움꾼이 없어서 그런거라고.
 
그러니까 내가 컨디션이 좋은 건, 좋은 게 아니고 나는 면역력이 최하로 떨어졌음에도 '자각'이 없었다는 거란다.
 
아니 이게 지금 무슨 말이야.
나는 아주 잘하고 있었는데. 잘 먹고 잘 쉬고 아주 잘했는데? 반대라고??
혹시 오늘 늦게자고 일찍 일어나서 좀 피곤해서 그런건가???
암만 생각해도 나 너무 괜찮은데 지금....
 
우리 둘 다 너무 놀라서 궁금한 질문들을 하나도 건네지 못하고 어버버하다가
 
-선생님 내일모레 1박 2일로 여행을 짧게 다녀오려고 하는데요,
-그냥 집에서 쉬어야 해요, 여행은 취소하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지금은 쉬면서 회복을 기대해 보죠.
 
믿기지가 않더라.
내 안마의자가 있는 아늑한 호텔,
그리고 성심당의 맛난 빵들,
그리고 고마운 분들께 보내려 했던 빵들.
 
이 모든 게 물거품이 되다니.
 
이다음 항암도 일단은 1월 2일 입원을 하고 피검사를 한 후에 진행할지 아님 미룰지 봐야 한다고.
 
아...
내 몸도 나처럼 해맑구나. 몸뚱이도 내 정신머리처럼 괜히 긍정적이구나, 쓸데없이.
 
-지난번 응급실 오셨을 때 꿰매었던 것 오늘 풀고 가시죠.
 
특수주사실 한켠에 가서, 봉합한 실을 빼 줄 인턴선생님을 기다렸다.
다들 바쁘신지 결국 혈액종양내과 전담 선생님이 오셔서 실밥을 풀었는데...
망할 ㅋㅋㅋ 아직 안 아물었대?
지금도 하얀 카테터가 내 상처구멍 사이로 방끗 웃고 있대?
 
당황한 선생님이 담당교수님께 연락을 취하는 소리를 들으면서 나는 뭐 내가 이렇지.
한번 꼬인 거 계속 꼬이는 거지. 이노무 상처는 처음부터 끝까지 말썽(케모포트 수난기/상처구멍 벌어짐 2단 콤보에 오늘까지 3단 콤보)이네.
 
다시 꿰매어야 한다고. 인턴선생님 기다려야 해서 좀 대기하라길래 선우랑 멍하니 기다리고 있었다.
한참을 멍 때리며 베드에 앉아있으니.. 특수주사실 내부 전경이 눈에 들어오더라.
항암하는 사람들이 서너 시간씩 주사액을 맞고 있다.
낯익은 빨간약(에이디마이신)들이 보인다.

입원까지 안 하고 이렇게 맞고 집으로 돌아가는구나. 

그나저나 언제 꼬매주는거야. 
집에 가고 싶다, 하고 있는데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
담당교수님이 오셨더라. 회진 돌다 오신 건가.

상처를 보시더니
‘혹시 마취 안 하고..’
‘예, 좋아요.’

어차피 한 땀인데,
마취주사가 곱니 아픈데, 그거나 이거나.

지난번처럼 그 공장 같던 수술실로 끌려가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다행이다 싶다.
얼른 집에 가면 좋겠다 싶었는데, 마취 안 해도 좋습니다. 아파도 되니까 후딱 꼬매주셔요, 이런 기분.

그나저나 우리 선생님은 내과 선생님인데 나 때문에 응급실도 왔다갔다 하시고, 바늘도 잡으시고.
저 원래 운이 좋은 사람이었는데 이상하게 요 케모포트는 저뿐 아니라 여럿 고생시키는군요.

이로써 케모포트 상처는 3번 마감 중.

아마 1월 2일 입원하면, 그 기간 중에 또 실밥을 풀 것 같은데… 그때도 안 아물었으면 어쩌나.


——
이제 거의 현실의 시간과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암 진단을 받은 시점과 현실의 시점의 간극이 조금씩 사라지면서 고작 1주일 정도의 차이밖에 안 남았어요.

지난 2개월을 최대한 축약하고 뭉뚱그렸음에도
길고 길었던 만연체의 글을 보셨을 피로감,
아마 이 이후부터는 적어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ㅎ
물론 제가 만연체의 뻘글을 잘 쓰긴 하지만,
그래도 앞으로는 일기식으로 가볍고 짧게 현재의 글을 써 올릴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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