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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소리/hions

항암 2차

by hionsK 2024. 1. 19.

24.01.02-24.01.16
 
입원하는 날. 연말연시니까 아무래도 입원실이 없을 수도 있겠어, 하고 일찍부터 서둘렀다.
오후 2시부터 4시까지 입원 등록을 하는데,
1인실에 들어가려면 좀 더 일찍 가서 번호표를 뽑아야 할 듯해서..
 
계획은 이랬다. 병원에서 나만 차에서 내려 입원등록 번호표를 뽑고, 채혈실로 가 채혈을 하고 다시 돌아와 내 순서를 기다리자. 그동안 선우는 주차를 하면 되고.
 
호기롭게 달려가 번호표를 뽑으니까, 바로 내 순서가 온다?(뭐 내가 그렇짘ㅋㅋ)
 
환자번호를 대니, 채혈부터 해야 입원등록을 해준다 한다.(뭐 내가 그렇짘ㅋㅋ 2탄)
 
채혈을 하러 가, 3통의 붉은 피를 뽑고 다시 입원등록을 했다.
 
원래 8n병동이 담당 층인데, 자리가 없어서.. 다른 병동 1인실이라도 괜찮은지 묻는다. 예. 괜찮습니다. 다만 지금 청소 중이라 등록은 좀 있다 해야 하는데 한 시간 정도 소요될 것 같다고.
 
괜찮습니다, 저희 밥 먹고 올게요.
 
강릉아산병원 앞에 흑장미라는 중화요리집이 있다. 처음에 멀리 갈 시간은 안되고 대충 먹자 해서 들어가보았는데, 짬뽕이 아주 맛있었다. 국물이 찐득할 정도로 진하고, 면발이 아주 쫠깃해서 우리 입에 딱이다.
그래서 사실, 입원 중에 탈출해서 먹고 온 적도 있다.

 
처음엔 짬뽕 짜장 탕수육 세트를 먹었다가,
아 이 집은 짬뽕이 갑이구나! 해서 짬짬탕수육 세트로..
홍합이 가득한데, 나는 원래 해산물을 잘 안먹어서 하나하나 껍질만 까 두고, 나중에 선우에게 넘긴다.
 
선우랑 나는 일회용품 쓰는 것이 싫어서, 앞치마도 들고 당기는데 우리가 우리 앞치마를 꺼내 두르니까 사장님께서 ‘여기 있어요, 이거 쓰세요’ 하고 들고 오시더라.
근데 놀랍게도 정갈하게 접혀있는 다회용 천 앞치마였어!!!
요새 많은 식당들에 일회용 컵도 많고 일회용 식탁보에, 일회용 앞치마가 많은지라 늘 마음이 불편했는데 여러모로 우리에게 참 좋은 짬뽕 맛집.
 
짬뽕 먹고 있는데 입원 등록 하러 오라고 하더라. 일사천리로 등록하고 올라가 늘 하던 대로 옷을 갈아입고/ 키와 몸무게를 확인하고/ 캐리어의 짐을 풀고/ 입원실 손 닿는 모든 곳을 다 소독하였다.
 
내가 처음 수술받던 날, 선우가 가만있으려니 자꾸 마음만 심란하고 혼자 있는 병실이 감옥같더란다. 그래서 정갈하게 옷을 갈아입고, 물티슈로 입원실을 닦고 바닥까지 다 소독하며 닦았다고.
(물론 이미 우리는 코로나에 걸린 상태ㅋㅋㅋ 깨끗한 병실에서 코로나로 곱니 아팠음.)
 
아무튼 첫 입원 이후로 입원실에 들어서면 나는 옷을 갈아입고 선우는 구석구석을 알콜소독하며 닦아내는 것이 첫 일과.
 


좀 쉬고 있으니 혈액종양내과 전담선생님께서 오셔서 케모포트 카테터 자리를 확인하러 오셨다.
벌써 3번째 꼬맨자리.
마지막 하석훈교수님이 꼬매주었을 때, 한 땀 따고, 그 위에 스테리스트립이라고 왜 미드 같은데 보면 살짝 찢어진 데 꼬맬 수 없을 때 붙여놓는 거.. 그걸 붙여두었었다.

<이건데, 이미 우리집에 곱니 많이 있음 ㅋㅋ 하도 칼로 잘 베이니까 비상용으로 치과쌤에게 받아두었음>

 
2개를 딱 붙여 놓아주셨는데, 아무래도 벌써 3번째다보니까 나랑 선우도 조심하게 되어서 방수밴드 붙여놓았다가 이틀에 한 번씩 열어 클로로헥시딘으로 소독하고 다시 방수밴드 붙여놓고 아예 스트립씰에는 손도 안 대었었음..
 
그 상태로 선생님께서 한번 열어보자고.
씰을 벗겨내고 선우랑 선생님이랑 둘이 계속 머리를 맞대고 소독하면서 찾아봤는데...
암만 봐도 피딱지만 보여.
꿰맸던 실이 없네? 상처는 아직 벌어져있고 피가 종종 나오는 것 같고.
 
선생님께서는 여차하면 포트로 항암제를 맞는 거 말고 다시 혈관을 잡아야 할 수도 있다고. 정 안되면 케모포트를 다시 심어야 할 수도 있다고.(아니 무슨 그런 무서운 말을 ㅠㅠ)
일단 다시 오겠다고.
 
선생님은 결국 3번 오셔서, 상처를 열어 확인하고 다시 닫고 다시 소독하고.
다행히 포트로 항암제를 맞자고, 그리고 상처는 꿰맬자리가 마땅찮으니까, 스테리스트립으로 닫아두자고.
 
와, 한 땀 아주 쥐콩만한 상처가 이리 발목을 오랫동안 잡을 줄이야..
무슨 항암주사보다 한 땀 안 닫힌 상처가 더 신경 쓰인대??
 
그래도 포트로 항암제 맞을 수 있다니까 그것만으로도 다행이다.
 
입원첫날은 늘 그렇듯, 자다깨다 자다깨다. 잘만하면 선생님들 와서 뭐 하고,, 또 잘만하면 밥시간이고 또 잘만하면 청소하신다고 오시고.
 
다크써클이 쮸욱 내려온 드디어 항암제 맞는 둘째 날.
 
이번 병동 선생님들께서는 천사분들이셔. 오늘 항암제 들어올 건데 언제 맞으시는게 좋을까요, 하고 우리 의견을 여쭤봐주시더라. 1시 넘어서 맞고 싶어요, 하니까 밥 먹고 천천히 맞자며 중간중간 확인해 주신다..
항암제 오기 전에 전담 선생님과 교수님이 회진 오셨는데 교수님이 나한테 격한 운동하는거 있냐곸ㅋㅋㅋㅋㅋ 아뇨, 숨만 쉬어요!
근데 왜 실밥이 터져서 없어졌냐고 ㅋㅋㅋㅋㅋ 넷이서 빵 터져서 한참 웃다가 항암 잘 받고 외래에서 보자고, 두 분 가시고 밥 먹고 드디어 항암타임!
 
먼저 어지러움증 약을 넣고,
안정제를 넣고.
그 후에 에이디마이신/ 엔독산 순서로. 이번에는 2시간 정도 걸린 듯하다.
 
다 맞고 두 시간정도 누워있다가 갑자기 이렇게 누워 있을 순 없다!! 하고 내가 막 선우를 꼬셔 밥먹으러 가자고.
 
지금 당장 삼겹살을 먹고 싶다고 병원 앞 삼겹살집을 갔다.
괜찮겠냐고, 무리하는거 아니냐고 묻는 선우에게 괜찮다면서! 삼겹살을 3인분을 시키고
나는 오로지 삼겹살만 뽀지게 먹었다. 아마 내가 2인분은 먹은 것 같음.

<와, 벌써 2주 넘게 흘렀는데도 사진만 봐도 속이 일렁거림. 지금보니 삼겹살이 다 기름덩이었네?>

 
미쳤지. 이 무분별한 충동으로 나는 한동안 고생을 했다.
 
병실로 들어와서 뭔가 좀 속이 이상했지만 뭐.
 
다음날부터는 아주 죽겠더라.
속이 니글니글 메슥거리는데 입에 당기는 것도 없고 어제 먹은 삼겹살 생각만해도 막 메슥거림이 최고조로 솟구쳐 미칠거 같더라.
 
집에 돌아와서 정말 암것도 못먹겠어서 겨우 생각한 것이 냉면. 그것도 냉면발 조금과 육수/동치미 같은 액체류.
 
항암제를 맞고 4~5일간은 오심과 구토증세가 심하다고 따로 약이 처방된다. 마약성분이라는데 이 약을 먹으면 잠이 많이 오긴 해도 먹고 조금 있으면 그래도 뭔갈 먹을 수 있는 상태가 된다. 그러니 항암 첫 주는 먹고 자고 먹고 자고의 반복.
 
그렇게 첫주는 메슥거림으로 점철되었고, 둘째 주부터는 또 컨디션이 좋아져 선우와 열심히 Raft 뗏목 타는 게임하면서 즐거이 지냄.
보통 게임하면 막 신나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몰두하게 되잖아??
그렇게 게임만 하다가 어느새 중간평가의 날이 다가오고 있더라..
그래서 게임도 끊고 다시 조신한 항암환자의 모습으로 돌아와 낮잠도 꼬박꼬박 자주면서 컨디션을 올리기 위해 노력을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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