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소리
[통진당 해산] 이 우울함을 어떻게 달래나/잠꼬대 아닌 잠꼬대/문익환/문성근
by 노마딬
2014. 12. 19.
오늘 헌법 재판소에서 통합진보당을 해산시켰다.
- 유목민
헌법재판소는 진보라는 칼을 시민들로부터 빼앗아
종북 빨갱이라는 색을 칠하여 보수에게 전달했고
보수는 진보라는 단어에 몰려드는 시민들을 해산시키기 위해
종북 빨갱이라는 색이 칠해진 진보의 칼을 휘두를 것이다.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칼에 베어져
칼보다 붉은 피를 흘려야만 하는가.
우리는 또 얼마나 오랫동안 숨죽이며
봄을 기다려야 하는가.
눈을 질끈 감아본다.
사랑하는 여자가 죽으면
이런 기분일까...
아버지의 멱살을 붙잡고
칭얼대는 어린아이처럼 울고싶다.
내 사랑하는 여자친구를
살려 내라고
아.. 정말 아버지 바짓가랭이라도 붙들고 싶은 날입니다.
친구가 저에게 그러더군요
넌 감정의 관성이 너무강해.
그런가봅니다.
아침 10시부터
여자친구의 부고를 듣고
하루종일 우울함의 관성에 시달렸습니다.
눈 감고
귀 막으면
우울함이 멈춰 줄 줄 알았습니다.
웬걸요.
우울함은 평지를 달리는 것이 아니라
천길 낭떨어지를 떨어지는 것이었습니다.
감정의 관성이 아니라
감정의 중력이 너무 센 아이였습니다. 저는.
떨어져 터지면
내 감정의 바닥이 너무 더러워 질까봐
에어백이라도 설치하는 마음으로,
친 아버지 멱살을 잡는 폐륜을 저지를 순 없으니
근처 교회 목사님의 멱살 잡는 심정으로,
아래 시낭송을 무한 반복하여 들었습니다.
통진당 해산과는 상관 없는 일이지마는.
웬지 가슴이 짠해지는게
감정의 밑바닥에
말랑한 라텍스 에어벡이 북풀어 오르는 느낌이었습니다.
늦더라도
봄은 오겠죠.
잠꼬대 아닌 잠꼬대
- 늦봄 문익환
- 문성근 낭독
난 올해 안으로 평양으로 갈 거야
기어코 가고 말 거야 이건
잠꼬대가 아니라고 농담이 아니라고
이건 진담이라고
누가 시인이 아니랄까봐서
터무니없는 상상력을 또 펼치는 거야
천만에 그게 아니라구 나는
이 1989년이 가기전에 진짜 갈 거라고
가기로 결심했다구
시작이 반이라는 속담이 있지 않아
모란봉에 올라 대동강 흐르는 물에
가슴 적실 생각을 해보라고
거리 거리를 거닐면서 오가는 사람 손을 잡고
손바닥 온기로 회포를 풀어버리는 거지
얼어붙었던 마음 풀어버리는 거지
난 그들을 괴뢰라고 부르지 않을 거야
그렇다고 인민이라고 부를 생각도 없어
동무라는 좋은 우리말 있지 않아
동무라고 부르면서 열살 스무살 때로
돌아가는 거지
아 얼마나 좋을까
그땐 일본 제국주의 사슬에서 벗어나려고
이천만이 한마음이었거든
한마음
그래 그 한마음으로
우리 선조들은 당나라 백만대군을 물리쳤잖아
아 그 한마음으로
칠천만이 한겨례라는 걸 확인할 참이라고
오가는 눈길에서 화끈하는 숨결에서 말이야
아마도 서로 부둥켜안고 평양 거리를 뒹굴겠지
사십사 년이나 억울하게도 서로 눈을 흘기며
부끄럽게도 부끄럽게도 서로 찔러 죽이면서
괴뢰니 주구니 하며 원수가 되어 대립하던
사상이니 이념이니 제도니 하던 신주단지들을
부수어버리면서 말이야
뱃속 편한 소리하고 있구만
누가 자넬 평양에 가게 한대
국가보안법이 아직도 시퍼렇게 살아 있다구
객쩍은 소리 하지 말라구
난 지금 역사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야
역사를 말하는 게 아니라 산다는 것 말이야
된다는 일 하라는 일을 순순히 하고는
충성을 맹세하고 목을 내대고 수행하고는
훈장이나 타는 일인 줄 아닌가
아니라고 그게 아니라구
역사를 산다는 건 말이야
밤을 낮으로 낮을 밤으로 뒤바꾸는 일이라구
하늘을 땅으로 땅을 하늘로 뒤엎는 일이라구
맨발로 바위를 걷어차 무너뜨리고
그 속에 뭍히는 일이라고
넋만은 살아 자유의 깃발로 드높이
나부끼는 일이라고
벽을 문이라고 지르고 나가야 하는
이 땅에서 오늘 역사를 산다는 건 말이야
온 몸으로 분단을 거부하는 일이라고
휴전선은 없다고 소리치는 일이라고
서울역이나 부산, 광주역에 가서
평양 가는 기차표를 내놓으라고
주장하는 일이라고
이 양반 머리가 좀 돌았구만
그래 난 머리가 돌았다 돌아도 한참 돌았다
머리가 돌지않고 역사를 사는 일이
있다고 생각하나
이 머리가 말짱한 것들아
평양 가는 표를 팔지 않겠음 그만 두라고
난 걸어서라도 갈 테니까
임진강을 헤엄쳐서라도 갈 테니까
그러다 총에라도 맞아 죽는 날이면
그야 하는 수 없지
구름처럼 바람처럼 넋으로 가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