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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소리/hions

페이스북에 올린 글(23.11.10)

by hionsK 2023. 12. 9.

 

 

 

 

 

<페이스북 친구들에게 근황보고글>

어제는 공식적으로 암환자 등록을 하였습니다.

‘암’이란 단어가 우리집에 찾아온 후
나는 조금 멍해졌고
선우의 일상은 내가 중심이 되었고
우리가 일구던 가죽하는유목민 노마딬의 일상은 멈췄습니다.
아! 고선생의 일상은 잘 지키고 있으니까 고선생 이뻐하시는분들 걱정마세요 ㅋ 여전히 고선생은 해맑고 이쁘고 건강하고 잘먹고 잘쌉니다.

암인것 같다, 에서
우리는 제일 먼저 하루 일과를 바꾸었습니다.
늘상 자고플 때 자고(아침 6~7시)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고(오후 2~3시) 하던 느슨한 일상에서
아침 10시에 꼬박꼬박 일어나는 새나라의 어른이가 되었지모에요!
앞으로 이른시간 병원을 오가야할텐데, 낮밤이 바뀐 상태로 병원을 오가면 컨디션이 안좋아질테니까, 가 빙구의 이유였고 저는 말 잘듣는 착한 어른이니까 지금도 아침 10시에 일어나서 차도 마시고 햇살 밑에서 고선생과 누워 있기도 하고 있습니다.

하루 한끼 먹는 것도 느슨해졌습니다.
체력을 키워야하니까 아침에 산길 따라 1시간 넘게 걷는데 그 전에 바나나를 하나 먹어야하고, 중간에 자꾸 뭔가를 먹어야 하며 먹고 싶은 리스트에 올린 것들을 끊임없이 먹고 있습니다.
덩달아 자정에 먹던 밥은 저녁 7시로 바꾸었습니다요. 물론 11~12시까지 먹어욬ㅋㅋㅋ

가을의 하늘이 참 이쁘더라.


노마딬의 제품라인에서도 제가 없어졌습니다.
제가 해야하는 손각인도 빼버리고, 제가 만드는 디자인도 다 없앴습니다. 또한 선우의 가방들 중에서 만드는데 시간이 소요되는 가방들도 없앴습니다.

우리가 쓸 수있는 자원들과 버틸 수 있는 시간을 따져본 후 선우가 치료에만 집중하자, 고 그렇게 결정했습니다. 나는 아직 정확하게 암환자가 된건 아냐, 그러니 일 할 수 있어.(조직검사 결과 듣기 전) 라고 해보았는데 그냥 일 하지 말고 행복하게 놀자고 합니다.

전화기를 무음으로 해두었습니다.
아무와도 통화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걱정하는 말을 듣는건, 아직 나도 잘 모르겠어서.
위로의 말을 듣는건, 내가 생각보다 무던해서.
앞으로의 예정에 대해 대답해야하는 건,
아 이건 정말 어려운 부분이었습니다.
보름 넘게 ‘너 암인거 같아, 암일수도 있어, 암일확률 95%이상이야‘ 하며 경고를 들었지만
’너는 이제 암환자야‘ 라는 확진은 없는 상황이었고
모든게 티미해서 내가 앞으로 뭘 해야하는지 전혀 모른체 병원에서 열어주는 최소한의 정보에 따라 검사를 받고 진료를 가고 하였으니까요.
그런 저한테 수술한대? 항암은? 병원은 어디로? 서울서 해야지? 등등 이런 질문들에 답이 참 어려워서 전화통화를 아무와도 하고싶지 않았습니다.

다들 고맙습니다.
메시지로 연락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선물하기를 핑계로 안부를 물어주고
택배상자안에 짧은 메모로 인사를 건네주어 고맙습니다. 각자의 방식으로의 ’안녕?‘에 제가 잘 화답하지 못한거 같아서 조금 미안합니다.

그냥 뭘 말해야할지 몰라서 답을 미룬 것일 뿐,
저는 참 괜찮은 상태입니다.
어제 병원에 가 결과를 듣기 전까지,

선우와 일찍 일어나 스트레칭을 하고, 산을 따라 엄청 예쁜 길을 오르락내리락 걸으며 운동을 했습니다.
그리고 돌아와서 다시 고선생과의 산책을 또 꼼꼼하게 했습니다.

더 놀고 싶다는 고선생을 검거해 집으로 가는 길.

 

 

 

 

 


낮시간에는 햇살 밑에서 책을 읽고,
텃밭의 수확물로 음식을 만들어 캐닝을 하고,
수세미를 수확해 내년에 쓸 수세미를 만들기도 하였지모에요.
일상의 시간동안 선우와 저와 고선생 우리 셋은 잠시도 떨어지지 않고 늘 같이 붙어있습니다.
그냥 그러고 싶어져서.

식사도 먹고싶은 것을 되게 진중하게 골라서 둘이 같이 요리를 해 엄청 공들여 먹었습니다.
곧 다가올 겨울에 대비해서 옷장의 옷들도 함께정리를 하고요.

그렇게 일상을 살았습니다. 정말 더할나위없이 행복하고 즐겁게.

어제 드디어 결과가 나왔는데,
사실 이게 결과라기엔 너무 하찮아서.
이게 암이고, 이 암은 어떤 녀석이고, 치료는 어떻게 하고, 수술은 00날 하자 ㅇㅋ?
하는 류를 기대한 것은 아니지만서도

그간 계속 해왔던 얘기처럼 아직도 티미합니다.
종양의 크기는 2cm에서 3cm.
어제는 4.5cm로.
예측했던 녀석 옆에 숨어있는 녀석이 있는데 얘도 안이쁜애일 확률이 높다고 하고,
림프에도 있다고 하고.
전이가 된 상태면 4기이고
전이가 안되었다면 2기.
일단 3박4일 입원을 해야한다고 합니다.
모든 검사를 다 받아야 항암이던 수술이던 계획을 잡을 수 있다고. 입원부터 권유합니다.

오늘 쯤이면 수술 날짜도 잡히고 치료 계획도 어느정도 나올 줄 알았는데, 또 티미한 이야기만 잔뜩 들은 것 같습니다.

입원 예약을 하러 가면서 산정특례등록을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이게 입에 죽어도 안붙는거긴 한데, 뭐 공식적인 암환자, 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암환자의 첫번째 행보는, 입원예약입니다.
근데 뜬금없잌ㅋㅋㅋㅋ
보호자 상주가 불가한 병동이랍니다???
너무 예상에 없던 일이라서 어버버하고 있는데
선우가
‘보호자 상주를 원하는데 어찌해야하나요?’
하고 강력 어필을 했더니
간호병동이 있고, 일반병동이 있는데 보호자 상주가능한 일반병동은 메인 진료센터와 좀 멀고 뭐 블라블라.
좀 생각을 하던 선우가
‘그래도 보호자 상주 병동에 입원을 해도, 진료에는 크게 차질이 없는거죠? 가능은 한거죠?’ 라고 물으니
담당의사에게 물어보고 허락(?)받아야 한다고.

다시 가서 간호사선생님께 문의 넣어두고 한참 대기하는데
나는 수술 전 검사니까.. 그건 혼자서 하고, 수술 후에는 보호자 상주할 수 있는 병동으로 예약하는건 어떨지, 고민하고 있던 중…
선우는
‘안돼 너 혼자서 심심해서. 심심하다고 찡찡거려야 하는데 나 없으면 안되지. 그리고 이번 입원은 즐거워야 하는 일정이라서, 입원 기간동안 즐겁게 보낼 수 있는 일정을 생각중이니까 같이 입원하자. 밀린 미드도 같이보고 병원 탐험도 하고 캠핑하는 것처럼 즐겁게 같이 있자.’ 하고 혼자의 입원을 결사 반대합니다.

선우의 이런 생각들 덕분에
될대로 되는거지 뭐, 하고 살아왔는데
‘될대로 되는거지만 즐겁게 해보지 뭐’ 로 살아가는 생각이 조금씩 즐겁게 바뀌어
저는, 그리고 우리는 꽤 행복하게 잘 지내고 있습니다.

걱정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따듯한 말들과 메시지에 다정히 화답하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어제 공식적 등록된 암환자가 된 김에 선우에게
‘빙달아 나는 오늘 암환자가 되었어! 너는 내가 어떤 암환자가 되었음 좋겠어?’ 라고 질문을 했습니다.

‘음.. 생각없는 암환자? 막 암이니 뭐니 자각없이 해맑고 신난 암환자. 아팠다가도 금세 괜찮아지는 암환자. 입맛 없지 않고 이것저것 잘 챙겨먹는 암환자. 그런 암환자가 되었음 좋겠어!’

사실 지금도 그렇게 지내고 있었어서.
이대로 쭈욱 똑같이 살면 되겠습니다 ㅎ
앞으로도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다들 오늘 따끈한 햇살 느끼면서 행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
또 길고 긴 만연체의 글입니다.
앞으로는 페이스북에 이런 글을 안쓰고 싶어서 근황보고를 꼼꼼히 마지막으로 하고싶어졌습니다.

예전처럼 페이스북에는 시답잖은 이야기, 잡소리, 질문들, 고선생 험담 같은 이야기로 채우고 싶어요. 뭐 좋은 얘기도 아니고 글 보시는 분들 피로하게 하고 싶지 않으니께요. ㅎ

암과 관련한 이야기는 어느 공간에서건 배설을 해야할테니까, 정해지면 말씀드릴게요, 그 때 놀러들오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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