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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소리/hions

암선고는 내 생일, 선물처럼 찾아왔다.

by hionsK 2023. 11. 14.

 

 

 

 

무언가 하고싶은 것이 생겼다. 쓸데 없지만 그냥 하고픈 것.

다름아닌 캐닝 Canning.

토마토를 애지중지 키워 소중하게 모아 토마토 페이스트를 만드는 것을 좋아하고 릴스나 숏츠의 알고리즘에서도 토마토를 수확해 소스를 만들고 열탕소독한 유리병에 옮겨 보관하는 영상이 끊임없이 재생된다.
그 중에 아니, 캐닝이라니?
유리병을 통조림캔화 한다니?

보르미올리병에 캐닝 뚜껑을 얹어 링을 돌려 고정해 끓여주고 식혀주면, 링을 제거해도 뚜껑만 딱 캔처럼 붙어있는 원리.


검색을 해보니 메이슨자 Mason Jar 가 캐닝에 적합해보이는데
직구하려니까 배송료가 엄청나게 비싼거야.
그래서 며칠 고민하다가, 국내에서 많이 쓰는 보르미올리 유리병에 캐닝 뚜껑과 캐닝 때 필요한 도구들을 따로 주문하고 유튜브로 캐닝을 공부하면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던 중 건강검진을 받아야 해, 후딱 강릉에 들러 받았고 그 저녁부터 다음, 그 다음날인 수요일까지 계속 한 번호로 전화가 오더라.
뭐 급하면 문자 보내겠지. 보통 그러고 마는데, 느낌이 이상해서 그 번호로 거니까
병원이라고.
왜일케 연락이 안되냐고.

종양이 보이는데 초음파를 해야하니 내원해야하는데,
담당 의사가 휴가라 다음주 월요일에 와야한다고.

혹시 덩어리가 안만져졌냐고.

예, 딱히.. 혹시 위치가 어디인가요?
-오른쪽 가슴 윗 부분에 이 사이즈면 만져질거에요.

내가 전화를 너무 안받아서 건강검진 결과지를 바로 보냈으니 곧 도착할거고 확인하고 월요일날 꼭 오라, 는 전화.

선우에게 말을 전하고,
우린 괜찮을거니 미리부터 걱정하지 말자고.

전화상으로는 종양이라고 하였는데,
이틀 뒤 도착한 검진결과지에는 유방암의심 이라고 확실히 적혀있더라.

목요일부터는 뭐 일상을 지내다가도 멍때리고 그렇게.
토/일 선우의 사촌들이 집에 오는 일정에 맞춰 금요일에 대청소를 싹 하니까 하는 동안 그래도 좀 덜 생각하고 그렇게 되더라.
손님 맞이하고 손님 보내고 그냥 깔깔거리고 아무일 없단 듯 위스키도 마시면서 매일이 똑같은 일상처럼.

드디어 월요일이 와 병원에 가니 건강검진센터 선생님들이 내 이름을 말하기도 전에 안내지에 내 이름을 적고, 가야할 곳을 적고 전화를 해 내가 왔음을, 그 쪽으로 보내겠음을 알렸다.

일단 외과에 들러 다시 한번 들러야 할 곳을 안내받고 초음파를 찍으러 가 안내대로 누워 기다리니
의사선생님이 들어와 겨드랑이부터 꼼꼼하게 본다.

종양이 있는 곳은 오른쪽 가슴.
왼쪽부터 보시길래,
아이스브레이킹으로 ’왼쪽도 봐야하나봐요. 오른쪽만 보는 건줄 알았어요.‘ 했더니
예, 이왕 하는김에 꼼꼼히 볼게요. 하더라.
만져지는 것은 없었어요? 하시길래
글찮아도 그 전까지는 몰랐고 만져지는 것도 없었는데 전화 받고나서 만져지고 심지어 아프더라고요. 웃기죠.

오른쪽으로 옮기니 화면에 내가봐도 아.. 저게 종양이구나 하는 것이 보인다.
몇번이고 찬찬히 보시다가 화면에 크기 등을 표시하고 다른 쪽도 꼼꼼히 보니, 두개 더 나온다고.
크기는 2cm로 보인다고.
암일 확률이 95%, 전신전이는 초음파로는 모르니까 펫시티를 찍어야 한다고. 아마 이따 외과의사선생님과 상담하시겠지만, 조직검사는 상급에서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머릿속에선 아.. 진짜 암이구나, 근데 펫시티라니? Pet이라니! 하며 실없는 단어들이 동동 떠다닌다.

외과선생님은 같은 소견을 내어 조직검사도 상급가서 받으라. 전원에 필요한 자료들은 다 챙겨 주겠노라 하신다.
선우는 서울가서 수술받는게 좋겠죠? 라고 물었고
의사 선생님은
저는 그런 말까지는 할 수가 없어요. 그건 전적으로 환자와 보호자의 판단이지 의료진이 개입하진 않습니다. 다만 서울은 예약이 어렵고 순서가 밀리니까.. 그것도 잘 고려해서 결정하시기 바랍니다. 며칠 더 늦는다고 종양이 갑자기 확 커지지는 않으니까요.

수납을 하고 이런저런 자료들을 받아 영상의학과에서 촬영 CD를 요청해 기다리는데 건강검진 센터 선생님이 지나가다 우릴 보고 반갑게 오시며 ’검진 잘 받으셨어요!‘ 하시다가 우리 손에 들린 종이들을 보시곤 예,하는 대답을 뒤로 하고 빠르게 지나치셨다.
나도 경황이 없어서 별 말씀을 못드렸는데, 건강검진을 받고 그 다음날부터 이틀동안 신경써서 전화주시고 우편도 빠르게 발송해주시고 내 대신 발을 동동 구르셨던거.. 진짜 고마워서 고맙다고 말씀 드렸어야했는데… 치료 잘 받고 내후년 건강검진 때 뵙겠다고 말씀드려야했는데 말야.

모든게 갑자기 엉망이 된 거 같더라.
근데 사실 모든게 정상이었던게 맞는데.

강릉의료원은 산부인과가 없어서 건강검진 내의 자궁경부암 검사는 받을 수 없어 원래 딱 그날 받을 계획이었고
내가 비록 암 소견을 받았지만, 검사는 해야하니까… 산부인과도 가야겠지, 하고 산부인과를 들렀다.
선생님이 오랜만이네요! 오늘 검사를…
하시는데,
내가
’선생님 제가 방금 유방암 95% 소견을 받고왔는데요‘ 라고 말을 꺼내는데 와.. 타인에게 처음으로 내 입을 통해 ’제가 암에 걸린 것 같아요‘ 라고 한 순간이었고
나는 엄청나게 떨고 있었고 정신 놓으면 막 울어버릴 것 같은 느낌이었다.

선생님은
’그럼 미레나 빼야겠네요, 미레나 부작용 뭐 그런거 때문은 아니고 호르몬 조절기구니까 빼는 것이 좋아요. 오늘 온김에 뺄까요?‘ 라고 했고
시술이 끝난 후에
’생리통과 생리양이 많아서 힘들어서 미레나를 하셨었는데,
며칠 더 출혈이 있을거에요. 근데 암치료 하면서 호르몬 관리해서 아마 생리는 조절해줄거에요‘ 라고.
선우가 산부인과 선생님한테 꼭 물어보라던
’선생님 제가 유방암 수술을 강릉에서 받느냐, 서울에서 받느냐 지금 고민중인데요‘ 하고 물으니
어디든 빨리 조직검사를 하고 스케쥴 빨리 잡히는 곳에서 하는 것을 추천한다고.
강릉병원도 그렇지만 여기저기 다 예약을 걸어두고 빨리 가능 한 곳으로 하시라고.

 

 

 


선우와 바닷가에 앉아서
하루가 참 길다, 하면서 바다를 보며 한참을 얘기했다.

내가 암환자구나. 어쩐지 좀 멍한 기분이고 내 나이가 몇인가 다시 셈해보며 이게 진짠가? 하는. 마치 내 머릿속은 뻥이지, 맞아? 진짜야? 나 암이라고? 에이 설마? 정말? 하며 수많은 도돌이표 속에서 까매진 것 같더라.

선우는 병원서 전화가 온 날부터/ 검진기록에서 유방암의심 이란 문장을 본 이후부터.
믿고싶진 않지만…
이미 내가 암일 경우에 대한 시뮬레이션을 해두고 조금씩 공부를 해두었다고.
막힘없이 앞으로의 계획을 말한다.

나는 그 누구에게도 알리고 싶지 않다, 고. 다만 내가 알기로 엄마한테 내 암보험이 있단 얘길 들었었는데 기억해둘껄.. 하고 있었더니.
선우는 웬만하면 수술은 서울서 받았으면 좋겠다고.
치료에만 전념할 수 있게 병원 근처에 숙소도 마련하고 싶다고.
그리고 우리가 산속에서 고립된 생활을 하니 모든걸 오픈했으면 좋겠다고. 이건 너의 의견이 중요하지만, 우리가 둘이서 고립된 상황에서 정보력이 부족할 수 있으니 여러 친구들과 지인들에게 많은 정보와 전폭적인 응원을 받으면 좋겠다고.
그리고 이제부터 아침형 인간이 될거라고.
평생을 새벽시간이 행복했지만, 이젠 아침형 인간이 되어야 너 병원 오갈때 최상의 컨디션으로 보필할 수 있을거 아니냐고.
사실 암은 언젠가 걸리겠지, 하며 그래도 요나보다 내가 먼저 걸려서 겁쟁이 요나한테 ’암은 이렇게 치료받는거야!‘ 하며 선례를 보여주고 팠는데 그건 좀 아쉽다고.
근데 괜찮아, 나는 너를 아주 잘 케어하고 우리 둘이 잘 해낼 거라고 생각한다고.
그리고 수술비나 병원비는 엄청 검색해보고 했는데 우리가 가진 보험과 벌어둔 돈으로 충분할 것 같고 혹시 모자란대도 괜찮다고. 다 대비했다고. 걱정은 1도 안해도 된다고.
어쩌면 고선생 수술비보다 요나 너 수술비가 더 쌀 수도 있다고 하하하.

드문드문 나는 길고 긴 선우의 말 속에서 자꾸 길을 잃었다가 돌아오곤 했다.
선우가 얘기하는 것을 듣고 그 꼬리를 잡고 혼자서 이생각 저생각하며 떠다니다 다시 선우의 말로 돌아오고 하며.

선우는 자꾸 내 눈을 보며
’요나야 나 믿지? 늘 내가 다 알아서 하잖아? 그치? 이것도 그래, 엄청 쉬운거야. 그냥 하면 되는거야. 내 손잡고. 맞지?‘

나는 그 누구와도 통화하고 싶지 않다고.
그냥 다른거 신경쓰고 싶지 않다고 투정을 부렸고
선우는 그 시간 후로부터는
보험회사/병원/부모님 등 모든 전화를 ’예, 김하연씨 보호자입니다.‘ 하며 나서주었다.

생일이었다. 마흔 두 번째의.

올해의 생일엔 모던하우스를 갈꺼라고.
모던하우스에서 사고픈거 10개 살거라고 막 그랬는데,
도저히 갈 기분이 아니더라.
그냥 매 주 월요일 루틴대로
마트에 들러 빙구의 와인과 나의 위스키를 한병씩 사서
우즈베키스탄 음식점에 가, 양고기 500g과 전통 빵을 사야지 했는데
이마트에서 선우가 오늘은 요나 생일이니까! 조니워커 하나 사볼까나, 했더니 판매하시는 선생님께서 슬쩍 다가와,
’제가 하이볼잔 두개 따로 챙겨드릴게요!‘ 하신다.
우즈벡음식점에 들러 고기를 픽업하고 그 앞에 베이커리에 들러 그래도 케잌 먹을까 해서 골랐더니
키르키스탄 사장님께서 쿠키를 같이 챙겨주시더라.

러시아풍 키르키스탄 케이크래. 취향 딱 저격당했지모야!


선물로 받은 쿠키와 예쁜 잔을 보면서
’와, 이거 두개 아까 그 의사쌤한테 갖다주고 암 도로 갖고 가라고 하고싶다‘ 하며 또 깔깔깔.

진이 빠져 집에 들어와 바로 씻고 잠시 누워있고 선우는 보험 관련해서 양가 부모님과 통화했다고.
앞으로 모든 전화는 내가 받겠으니, 너는 아무 생각하지말고 너 통화 하고싶을 때만 하라고.
서울에서 수술 받는 것에 대해 얘기를 많이 들었는데 서울에서 하면 어떤 이점이 있고 뭐 어떻고 어떻고. 강릉에서 하면 어떤 이점이 있고 어떻고 어떻고 하다고.
어디서 수술하느냐에 대한 얘기를 하는데,
선우는 서울에서 하는 것에대한 이점이 크다고 한다.
내 표정을 보고 ‘서울에서 하기 싫은 이유가 뭐야?’ 라고 묻는데 서울이고 강릉이고 별 생각이 없다고. 그냥 서울은 다들 서울에서 하니까. 좋다는데 이유가 있겠지 싶고,
강릉은 가까우니까. 집과 가깝고 고선생도 덜 걱정되고.
그냥 내가 좋아하는 강릉에 오가는 길이라 생각하면 좋겠지 싶고.

나는 사실 일단 뭔가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내가 다른 사람들과 통화하고 싶지 않고 숨고 싶은 것도
내 머릿속에서 아직 요이땅! 하는 출발 신호가 명확하지 않아서가 큰 이유라고.
조직검사를 하고 나면 계획이 세워지는데,
보통 항암을 먼저 하느냐, 수술을 먼저하느냐 등등 그런 것들부터 나와야 하는데
아직 이게 안 이뤄져있으니까
자꾸 머릿속만 까매지고 그 어둠속에 나를 숨기고 싶어진다고. 그래서 서울에서 하면 좋드라, 안다고. 아는데 여러번 왔다 갔다 하면서 진료부터 받고 초음파 받고 하면서 이제껏 해온 과정을 되풀이하고 하는데도 예약을 잡아야 해서 오랫동안 기다리고 하는게… 나는 그걸 하고 싶지가 않고 그냥 어서 빨리 ’조직검사‘ 예약이라도 받고 싶다고.

이런 상황에서 누군가와 통화를 하게되면
뭐가 좋다더라 이렇게 해야된다더라 등등 그런 얘기가 나올텐데 나는 미쳐버릴거 같다고.
내 머릿속안에서 정리가 싹 되어 ‘아 그건 이렇게 할 계획이고/ 그것보단 이게 나한테 더 낫고/ 아 그런 꿀팁이!’ 등등 내가 생각하고 판단하고 할 무언가가 지금은 하나도 없어서
듣기만 해야하는 것이 아주 고역이라고.

내가 토하듯 말을 꺼내니
선우는 앞으로 모든 전화는 안받아도 되고, 본인이 처리해줘도 되고, 네 말대로 얼른 조직검사가 되는 것부터 먼저 일정을 잡고 그 후에 수술을 어디서 할 것인지를 결정하자고.
일단은 오늘은 아무것도 결정할 것이 없으니
너의 생일을 즐기자고.
우리 또 행복하게 하루를 마무리 하자고.

어느 생일날, 혼자 신나 케잌 훔쳐먹던 고선생.



그래, 오늘은 내 생일이라 즐거운 날이고
뜬금없이 암환자가 되었고
나는 선우가 있고 고선생이 있는 행복한 환자니까.

암과의 동거동락 1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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