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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소리/hions

골방안에 틀어박히다.

by hionsK 2023. 11. 23.

 

 

 

 

누구와도 연결되고 싶지 않았다.
하필 생일에 일이 터진지라,
메시지와 메신저로 이런저런 선물들이 들어오고 있었다.

근데 아무것도, 누구와도 연결이 되고싶지 않아서 그냥 창을 닫아버렸다.
뭐 일주일 정도 지나면 선물들은 반환되겠지, 그럼 그 사람들에게 지불했던 돈이 되돌아 가겠지, 하며.

친구들은 조심스레 선우에게 연락을 시도했다. 선우는 내 매니저처럼 00에게는 그래도 연락을 해서 네 목소리를 들려주었으면 좋겠다, 그래야 걱정을 덜 할 것 같다고 내게 전해주기도 하고
00한테 연락이 왔었고 내가 잘 말했다, 고 알고만 있으라 언질을 해주기도 했다.

다들 내가 왜 연락을 안받고 싶어하는지 어떤 생각인지 잘 모르겠지만서도 그래도 내 의중을 헤아려 각자의 방식으로 조심스레 말을 건넸다.
선물하기, 같은 작은 아이템을 빌어
‘너 이거 좋아하잖아, 너 생각나서. 나 언제고 여기 있어! 괜찮을꺼야.’ 라던지
‘이거 보고 잠시라도 웃으셨으면 좋겠어서 보냅니다, 다 잘될겁니다.‘ 하며 재밌는 아이템을 보내준다.

마음이 참 고맙다.

가끔 정말 무작정 전화부터 걸어오기도 하는데,
모르겠다.. 울리는 전화벨에 그냥 마음이 쿵, 하고 떨어지고 한없이 가라앉는게 왜인지.
아무일도 없듯 그저 행복하단 듯 깔깔거리며 선우와 고선생과 일상을 보내는 틈에 전화가 오면 나도 선우도 얼어버린다.
나는 전화 벨소리에 그냥 얼어버리고, 선우는 그런 날 보며 얼어버리고.

안 받고 싶어서 그 자리를 피해버리지만 끊겼다가도 두어번 연달아 울리면, 안받을 수가 없더라.
그런 전화는 늘 그렇다.
어떤 상황인지 묻고, 어디까지 진행되고 있는지 묻고, 어찌할건지 묻고.
대답하고 대답하고 대답하면 자기 이야기를 한다.
이게 좋다, 이러니까 도움된다, 이게 맞다.
나는 그런 얘기가 솔직히 많이 힘들다. 듣는게. 깊고 깊고 깊게 자꾸만 가라앉는 기분에 휩쌓인다. 세상 우울한 사람인냥 갑자기 암흑으로 내 세상이 변하는 기분이다.

내가 왜 그런 얘기들이 힘겨운지 한참을 생각했다.

아직 계획을 확실히 세우지 못했다.
내 종양이 어떤 상황인지 적확하게 말해줄 검사와 의사를 만나지 못했다.
그래서 내가 앞으로 어떻게 해야할지 잘 모르겠다.
이런 상태면 이렇게 하고, 저런 상태면 요렇게 하고 등등의 상태에 따른 유동적인 생각만 해보았다.

근데 모든 사람들이 이렇게 해야한다고 내게 말한다.
나는 그저, 내가 내 상황을 적확하게 알아내고 충분히 생각하고 선우와 제일 좋은 판단을 내리고 싶은데
이래라 저래라 이게좋다 저게좋다 다들 날 흔들기만 한다.

흔들기만 하면 다행이지, 내가 말을 안듣는다며 화를 내기도 하더라.

그러니 전화 공포증이 생기지.
아무와도 연결되고 싶지 않다.
내가 내 스스로 판단을 하고 다른 사람들의 모든 말에 잘 대답할 수 있을때까지는 그냥 지금처럼 선우랑 고선생이랑 아무일 없단 듯 일상을 즐기고 싶다.

이런 얘기를 하면 본인얘기가 아닌데도 ’난가..?‘ 하며 혼자서 괜히 미안해하는 분들이 있는데… 아니다, 내가 막고 싶은 연락은 따로 있고
문자로, 메시지로 조심스레 말 걸어주시는 분들은 참 고마워서… 내가 얼른 계획을 세우고 제일 먼저 연락드려 ’걱정해주어 고맙습니다, 저는 괜찮습니다‘ 라고 하고 싶다.
그냥 시간이 좀 필요할 뿐이다.
다시 연결 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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