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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19

모든 건 망할 날씨 때문이야. 병원을 갔다오고 그 다음날은 고선생과 소풍을 가고. 그렇게 운동겸 산책을 이틀정도 쉬었는데 다시 하려니 몸이 좀 되더라.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 냥 짧은 코스를 후딱 돌고 집에 들어왔다. 기분이 영 별로다. 자꾸 눕고 싶다. 무기력해질것 같은게 영 별로다. 맛난거 먹으면 기분이 좋아질 거라고. 마침 장날이라 구경을 갔다. 상인분들이 왤케 오랜만이냐고 반겨주시며 어디 아팠냐 하는데 ‘아니라’고, 바로 대답이 튀어나오더라. 안 아팠어, 아무 일도 없었어. 하루종일 머리가 좀 아팠는데, 빙구랑 둘이 널부러져서 컨디션 안좋은 것에 대해 얘기하며 모든 이유를 다 날씨로 돌리기로 했다. 모든게 다 날씨 탓이야. 머리가 띵해, 망할 날씨! 망할 날씨, 오늘은 해가 너무 쨍해! 망할 날씨! 이렇게. 괜찮다. 매일이 행복.. 2023. 11. 30.
암선고 일주일 전. 알림 꺼놓고 또 즐겁게 살면 돼. 조직검사를 받고 일주일 뒤에 진료 예약을 잡아두고 나오면서 우리는 이런얘기를 했다. 또 일주일의 시간이 생겼구나. 모든 것은 일주일 뒤로 미루고 아무 걱정도 없이 또 즐겁게 살자, 고. 알림을 꺼놓고 즐겁게 놀다가 일주일 뒤 알림(결과) 받으면 그럼 그 때 최선에 대해 생각하자고. 아픈건 아픈거고 일단 조직검사를 잘 해냈다는 것이 되게 좋더라. 아파서 찡그리다가도 끝났다는게 신이 나서 해실해실 웃으니 선우도 덩달아 ‘진짜 용감하다, 울지도 않고 그 무서운걸 다 했네?’ 하며 추켜세워주는데 나는 맞다고, 진짜 나는 용감하다고 검사도 끝이라고! 신난다고 날 더 칭찬하라고 요구하며 한참을 웃는다. 새로운 하루가 시작되고 어제 혼자 집에 있었을 고선생을 달래주러 셋이 소풍을 나.. 2023. 11. 29.
조직검사, 곱니 아프더라. 상급병원으로 전원하고 초진 날짜가 잡혔다. 드디어, ‘너는 암환자야!’ 하고 확진 해줄 의사를 만나는 날. 사람이 참 많더라. 주차장을 빙글빙글 돌고, 큰 병원을 헤매고 다니다 겨우 도착해 한시간을 기다려 의사선생님을 마주했다. 전 병원에서 찍어온 내 초음파를 보여주며, -여기 이게 모양이 이쁘지 않죠, 이게 암이 아니라고는 못하겠어요. 나머지 두개는 확인이 필요하지만, 얘는 암일 확률이 아주 높습니다. 라 한다. 내가 뭘 알겠냐만, 내가 보면 이쁘던데.. 그냥 다 이쁘던데. 이쁘면 암이 아닌가, 그럼 좋겠다. 오늘 조직검사를 받아야 한다고 일단 안이쁜 녀석을 먼저 검사할 것이라고. 그리고 일주일 뒤에 결과를 놓고 다시 얘기하자고. 또 한참을 기다려 조직검사 시간을 예약하고 중간에 시간이 떠 점심을 먹었.. 2023. 11. 29.
열흘 째 예비 암환자. 암일 확률이 98%이상이다, 라는 말을 듣고 딱 열흘 째. 오늘은 조직검사 날. 일찍 누웠는데 시간마다 깨서 잠을 통 못잤다. 꿈에서 조직검사를 몇번이나 했는지. 꿈인데도 통증이 생생해 좀 억울하더라. 어제 선우의 브리핑에 따르면, 아침 8시에 일어나 9시에 강릉으로 출발, 10시에 병원에 도착해 소견서와 영상CD등을 접수하고 10시 45분에 진료 받으면 된다고했는데 나는 6시부터 말똥말똥. 이왕 말똥말똥 거리는 김에 검색을 해볼까 해서 유방암 조직검사부터, 조직검사 후 결과 나오는 기간 등등을 찾아보다가 여러 사람들의 생생후기(?)를 읽게되었다. 의외로 항암을 안해도 되는 경우도 많다더라. 항암을 대비해서 겸사겸사 머리를 미리 밀어야겠다, 했더니 선우도 같이 밀겠다 하더라. 그럼 인도 이후 두번째 동반.. 2023. 11. 26.
일상을 멈추다. 가죽하는유목민 노마딬의 판매 작품중의 내 디자인은 모두 판매중지를 걸어놓고, 손글씨 각인이 가능했던 소품들도 각인옵션을 막아두었다. 그러고 나니 진짜 하루가 널널하다. 예전에는 새벽 서너시에 각자의 잠자리로 들어가 아침 8시경 잠을 자고 오후 두세시 쯤 일어났는데 그 일상을 바꾸고 나니 하루에 덤으로 생긴 시간이 꽤 된다. 이를테면 늘 잠들기 전에 서너시간정도는 넷플릭스를 보면서 시간을 보냈는데 이젠 12시 침대에 누워 잠시 커뮤니티나 SNS를 둘러보다보면 꾸벅꾸벅 졸게되어 금세 잠든다. 그럼 또 아침에 일찍 일어나게 되고, 선우와 산책겸 운동을 하며 한시간 걷다 와도 정오가 안된 시간. 하루가 엄청 엄청 길어졌다. 예전엔 해가 너무 짧다고(겨울에는 해가 너무 짧은 산속이라 고작 삼십분정도 해를 쫓다가 .. 2023. 11. 24.
암환자가 되었다. 나는 아직 아프지 않은데. 그래서 암환자란 자각도 없는데. 그러니까 내가 헤실거리며 농담 따먹기를 하고 즐겁게 놀던 페이스북에 글을 올린건 한큐에 끝이니까. 어차피 오픈을 해야한다면 누구한테 해야하지? 뭐 사실 할 사람도 없는데. 근데 오픈을 하건 안하건 나는 페이스북으로 친구들에 이런저런 일상을 잘 공유하니까 그래, 페이스북이 한큐에 짱이겠다. 상처에 붙인 밴드를 떼어 낼 때 한번에 확 잡아 뜯는 기분으로. 그렇게 글을 올렸다. 계속 알림이 오길래 모든 알림을 지우고 끝내 페이스북 어플을 지워버리고 마치 아무일 없는 듯 눈을 감았다. 근데.. 뭔가 좀 서늘해져서 핸드폰을 보니까… 미쳤다… 인스타그램으로 공유가 되었네. 페이스북은 그냥 내 오랜 온라인 벗들이 많아서 이런저런 일상을 공유하는데 전혀 거리낌.. 2023. 11. 23.
골방안에 틀어박히다. 누구와도 연결되고 싶지 않았다. 하필 생일에 일이 터진지라, 메시지와 메신저로 이런저런 선물들이 들어오고 있었다. 근데 아무것도, 누구와도 연결이 되고싶지 않아서 그냥 창을 닫아버렸다. 뭐 일주일 정도 지나면 선물들은 반환되겠지, 그럼 그 사람들에게 지불했던 돈이 되돌아 가겠지, 하며. 친구들은 조심스레 선우에게 연락을 시도했다. 선우는 내 매니저처럼 00에게는 그래도 연락을 해서 네 목소리를 들려주었으면 좋겠다, 그래야 걱정을 덜 할 것 같다고 내게 전해주기도 하고 00한테 연락이 왔었고 내가 잘 말했다, 고 알고만 있으라 언질을 해주기도 했다. 다들 내가 왜 연락을 안받고 싶어하는지 어떤 생각인지 잘 모르겠지만서도 그래도 내 의중을 헤아려 각자의 방식으로 조심스레 말을 건넸다. 선물하기, 같은 작은 .. 2023. 11. 23.
새로운 녀석이 나타나면, 나도 변해야지. 일상이 생겼다. 이제 우리는 시도때도 없이 병원을 들락날락 거릴 것 같은데, 늘 오후 3~4시에 일어나서는 안될거 같다며. 선우의 목표는 아침 8시 기상이다. 당분간 적응하기 위해 아침 10~11시사이에 일어나기로. 우선 선우는 일어나선 거실 커튼을 열고, 블라인드를 올려 채광을 높인 후, 내 방으로 달려온다. 안녕? 하고 나와 눈을 맞추고 내 다리 맡에서 골골거리며 기다리는 고선생에게 몸을 낮춰 그루밍을 도와준다. 나는 일어나 조금 따뜻한 옷을 걸치고, 세안을 하고, 뒷 주방의 효소병들을 한번 열어 섞어준다. 그 사이에 따뜻한 차 한잔을 마신다. 그리고는 테이블에 앉아 전날의 일상을 기록하면, 선우가 정성들여 커피를 내린다. 커피를 마시며 선우는 스트레칭을 하고 나는 씻고 옷을 갈아입고 작은 보온병에 .. 2023. 11. 14.
암선고는 내 생일, 선물처럼 찾아왔다. 무언가 하고싶은 것이 생겼다. 쓸데 없지만 그냥 하고픈 것. 다름아닌 캐닝 Canning. 토마토를 애지중지 키워 소중하게 모아 토마토 페이스트를 만드는 것을 좋아하고 릴스나 숏츠의 알고리즘에서도 토마토를 수확해 소스를 만들고 열탕소독한 유리병에 옮겨 보관하는 영상이 끊임없이 재생된다. 그 중에 아니, 캐닝이라니? 유리병을 통조림캔화 한다니? 검색을 해보니 메이슨자 Mason Jar 가 캐닝에 적합해보이는데 직구하려니까 배송료가 엄청나게 비싼거야. 그래서 며칠 고민하다가, 국내에서 많이 쓰는 보르미올리 유리병에 캐닝 뚜껑과 캐닝 때 필요한 도구들을 따로 주문하고 유튜브로 캐닝을 공부하면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던 중 건강검진을 받아야 해, 후딱 강릉에 들러 받았고 그 저녁부터 다음, 그 다음날인 수요일까.. 2023. 11.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