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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생활 보통 일요일 오후에 입원접수가 된다. 별 생각없이 13시부터 15시까지 접수 한다니 조금이라도 늦게가야지. 입원하면 그대로 갇히니까 버티다 제일 끝에 입원해야지. 느즈막히 일어나 느즈막히 준비를 하고 여유있게 병원에 도착했다. 근데 으잉? 1인실이 없다네. 2인실밖에. 아뿔사, 그래서 사람들이 일찍 오는구나. 원하는 병실에 들어가려고. 강릉아산병원은 2인실보다는 4인실이 더 낫다는 말들이 많아, 4인실도 물어봤으나.. 내가 들어갈 병동은 6인실만 남았다고 하더라. 별 수 없이 2인실 부탁드립니다. 73병동. 간호사 선생님이 병실을 안내해주고 바로 나를 스테이션으로 끌어 몸무게와 키를 쟀다. 아… 완전 무거운 니트와 완전 무거운 와이드 코듀로이바지인데. 역시나 기본 몸무게보다 2.5kg 정도 더 나온 상태.. 2023. 12. 14.
공포감 VS 무던함 뭔가 엄청나게 두렵거나 실제하는 공포에 일상이 버겁지는 않다. 사실 별 생각이 없다. 시술이던 수술이던 무언가를 앞두고 ‘아프다던데. 얼마나 아프려나.’ 그 정도의 걱정 이외의 것은 모든게 죽음으로 치환된다. 예컨데 내가 버틸 수 있는 두려움의 총량이 100이면, 지금껏의 모든 두려움은 고작 10 안팎이고, 다만 이 두려움은 계속 소량씩 누적되는 것이라 쌓이고 쌓이다 100이 넘어가는 순간 아, 그냥 포기하고 죽어야지. 뭐 이런 류. 그래서 주위 사람들의 ‘두려워하지마, 겁내지마, 잘할 수 있어, 이겨내야지.’ 등등의 위로에 아직은 그 감정을 잘 모르겠어서 어떤 감정일까 늘 물음표가 되어 어색하게 답하게 된다. ‘예, 그럴게요.’ 실생활의 나는 이런데 꿈의 나는 정반대이다. 일례로 조직검사 같은거. 실제.. 2023. 12. 12.
첫 번째 입원 수요일에 진료를 다녀와서 일요일에 입원을 하기로 했다. 그러니까 우리가 또 신나게 놀 수 있는 날은 목/금/토 이렇게 3일. 사람의 몸은 참 신기하다. 전 날 늦게 잤는데도 10시에 눈이 떠지다니. 오늘은 뭐할까, 계획하는데 계획과는 다르게 갑작스런 김장이벤트가 잡힌다. 고선생과 산책 나간 선우가 아무래도 배추들이 곧 얼어죽을거 같은데, 김장을 해야겠다고. 그래서 김장하는 선우 옆에서 보조하며 하루를 보냈다. 내일은 집을 좀 오래 비워야하니, 청소를 해둬야 겠다 하고 대청소 예정이니 토요일은 진짜 놀아야겠다, 고. ‘암인거 같대요’ 하는 글만 띡 올려두고 잠적했던 페이스북에 글을 다시 올렸다. 아주 길고 긴 글. 페이스북은 시덥잖은 일상 이야기나, 잡담, 내가 얼마나 허술한 인간인지에 대한 반성, 고선생.. 2023. 12. 9.
페이스북에 올린 글(23.11.10) 어제는 공식적으로 암환자 등록을 하였습니다. ‘암’이란 단어가 우리집에 찾아온 후 나는 조금 멍해졌고 선우의 일상은 내가 중심이 되었고 우리가 일구던 가죽하는유목민 노마딬의 일상은 멈췄습니다. 아! 고선생의 일상은 잘 지키고 있으니까 고선생 이뻐하시는분들 걱정마세요 ㅋ 여전히 고선생은 해맑고 이쁘고 건강하고 잘먹고 잘쌉니다. 암인것 같다, 에서 우리는 제일 먼저 하루 일과를 바꾸었습니다. 늘상 자고플 때 자고(아침 6~7시)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고(오후 2~3시) 하던 느슨한 일상에서 아침 10시에 꼬박꼬박 일어나는 새나라의 어른이가 되었지모에요! 앞으로 이른시간 병원을 오가야할텐데, 낮밤이 바뀐 상태로 병원을 오가면 컨디션이 안좋아질테니까, 가 빙구의 이유였고 저는 말 잘듣는 착한 어른이니까 지금도.. 2023. 12. 9.
어떤 암환자가 될까? "오늘 나는 암환자가 되었어. 선우야, 내가 어떤 암환자가 됐음 좋겠어?" "음.. 생각없는 암환자? 막 암이니 뭐니 자각없이 해맑고 신난 암환자. 아팠다가도 금세 괜찮아지는 암환자. 입맛없지 않고 이것저것 잘 챙겨먹는 암환자. 그런 암환자가 되었음 좋겠어!" "콜!" 2023. 12. 6.
이제 나는 공식 암환자. 한참을 기다려 드디어 의사를 만났다. 조직검사를 하고 꼬박 일주일. 선생님은 원래 알고있던 녀석 외에 바로 옆에 있는 하나의 종양과, 림프에 또 보이는 녀석도 불안하다고. 크기는 4.5cm 정도 되며, 만약 전이가 되었다면 4기, 다행히 전이가 안되었다면 2기라고 한다. 아직 젊은 나이라 공격적인 치료를 하고 싶은데, 항암도 염두해 두어야 한다고. 일단 일요일 입원해서 3/4일간 검사를 해야한다고 한다. 그래야 그 후에 수술이던 항암이던 계획이 잡힐듯 하다고. 선우는 선생님 말대로 입원을 하는 것이 맞는거 같다고 나를 바라보았고, 내가 끄덕이자 ‘입원할게요. 그리고 부분절제던 전체절제던 저희는 관계없습니다. 의료진의 판단에 따라 좋은 예후를 기대하는 것이 목적이니까요.’ 라고 입원에 동의했다. 나는 오늘.. 2023. 12. 2.
하루하루 바쁜데, 마음은 무기력 해. 루틴이 무너졌다. 일어나는 것도 조금 느슨해지고, 무엇보다도 산책 나가는 것을 안하고 있다. 선우는 눈을 떠 내 상태를 체크하고 산책을 가고싶으면 가자고, 안가고 싶으면 안가도 된다고 내 의사를 물어봐준다. 마음은 안가고 싶은데 괜히 작심삼일 등의 죄책감으로 주저하면, 괜찮다고, 너 하고싶을 때 하는 것이 제일 좋은거라고 운동 몇 번 거른다고 큰일 나는 것은 아니라고 내 마음을 안심시켜준다. 마음이 급해졌다. 날이 추워지고 있고, 텃밭에는 아직 채 익지 않은 토마토들이 그대로 달려있다. 호박들과 수세미도 정리해두어야 하는데. 산책과 운동보다는 얼른 토마토들을 수확해 그린토마토 살사와, 그린토마토 처트니를 만들어 캐닝을 해둬야 한다. 고추들도 얼른 수확해 손질하고 얼리거나 건조해두어야 하고, 수세미도 끓는.. 2023. 12. 2.
모든 건 망할 날씨 때문이야. 병원을 갔다오고 그 다음날은 고선생과 소풍을 가고. 그렇게 운동겸 산책을 이틀정도 쉬었는데 다시 하려니 몸이 좀 되더라.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 냥 짧은 코스를 후딱 돌고 집에 들어왔다. 기분이 영 별로다. 자꾸 눕고 싶다. 무기력해질것 같은게 영 별로다. 맛난거 먹으면 기분이 좋아질 거라고. 마침 장날이라 구경을 갔다. 상인분들이 왤케 오랜만이냐고 반겨주시며 어디 아팠냐 하는데 ‘아니라’고, 바로 대답이 튀어나오더라. 안 아팠어, 아무 일도 없었어. 하루종일 머리가 좀 아팠는데, 빙구랑 둘이 널부러져서 컨디션 안좋은 것에 대해 얘기하며 모든 이유를 다 날씨로 돌리기로 했다. 모든게 다 날씨 탓이야. 머리가 띵해, 망할 날씨! 망할 날씨, 오늘은 해가 너무 쨍해! 망할 날씨! 이렇게. 괜찮다. 매일이 행복.. 2023. 11. 30.
암선고 일주일 전. 알림 꺼놓고 또 즐겁게 살면 돼. 조직검사를 받고 일주일 뒤에 진료 예약을 잡아두고 나오면서 우리는 이런얘기를 했다. 또 일주일의 시간이 생겼구나. 모든 것은 일주일 뒤로 미루고 아무 걱정도 없이 또 즐겁게 살자, 고. 알림을 꺼놓고 즐겁게 놀다가 일주일 뒤 알림(결과) 받으면 그럼 그 때 최선에 대해 생각하자고. 아픈건 아픈거고 일단 조직검사를 잘 해냈다는 것이 되게 좋더라. 아파서 찡그리다가도 끝났다는게 신이 나서 해실해실 웃으니 선우도 덩달아 ‘진짜 용감하다, 울지도 않고 그 무서운걸 다 했네?’ 하며 추켜세워주는데 나는 맞다고, 진짜 나는 용감하다고 검사도 끝이라고! 신난다고 날 더 칭찬하라고 요구하며 한참을 웃는다. 새로운 하루가 시작되고 어제 혼자 집에 있었을 고선생을 달래주러 셋이 소풍을 나.. 2023. 11. 29.
조직검사, 곱니 아프더라. 상급병원으로 전원하고 초진 날짜가 잡혔다. 드디어, ‘너는 암환자야!’ 하고 확진 해줄 의사를 만나는 날. 사람이 참 많더라. 주차장을 빙글빙글 돌고, 큰 병원을 헤매고 다니다 겨우 도착해 한시간을 기다려 의사선생님을 마주했다. 전 병원에서 찍어온 내 초음파를 보여주며, -여기 이게 모양이 이쁘지 않죠, 이게 암이 아니라고는 못하겠어요. 나머지 두개는 확인이 필요하지만, 얘는 암일 확률이 아주 높습니다. 라 한다. 내가 뭘 알겠냐만, 내가 보면 이쁘던데.. 그냥 다 이쁘던데. 이쁘면 암이 아닌가, 그럼 좋겠다. 오늘 조직검사를 받아야 한다고 일단 안이쁜 녀석을 먼저 검사할 것이라고. 그리고 일주일 뒤에 결과를 놓고 다시 얘기하자고. 또 한참을 기다려 조직검사 시간을 예약하고 중간에 시간이 떠 점심을 먹었.. 2023. 11. 29.